사우디아라비아, 사형집행인의 인터뷰
다음의 내용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사형 현장에서 사형을 집행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TV에 직접 출연하여 인터뷰 한 내용이다. 미리 이야기해 둘 것은 그의 인터뷰 내용이 매우 과격하고 표현도 정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내용은 독자들이 사우디 아라비아의 독특한 종교적 문화적 특성을 느끼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기독교에 대해서 조금의 관용도 베풀지 않고 철저하게 박해하는 나라로 유명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몇 년 동안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의식해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설혹 발견되더라도 사형을 집행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우디 아라비아는 기독교인 등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발견되면 사형에 처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환경은 전혀 변함이 없다.
사회자: 오늘 소개할 분은 우리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사형집행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유명한 압둘라 빈 사이드 알 비시씨이다. 이 분의 칼의 움직임은 진지함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는 일단 일이 주어지면 타협이 없다.
압둘라 알 비시(이하 압둘라): 내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1991년 쯤 그러니까 나의 아버지가 사망하고 열흘 쯤 지난 후부터이다. 나의 일을 감독하는 사람들은 나의 일을 임무라고 말한다. 알라신에게 영광돌리는 임무라는 것이다. 나는 형을 집행할 때 아버지가 유물로 남긴 칼을 사용한다. 아버지는 이러한 나를 보며 알라신의 곁에서 평화롭게 안식하실 것이다. 나의 일은 아버지와 알라신을 모두 기쁘게 하는 일이다. 내의 첫 사형집행은 세명을 한꺼번에 처형하는 일이었다.
사회자: 아부 바데르(또 다른 출연자)의 칼은 수백 명의 머리를 잘랐다. 그의 장남인 바드르도 같은 일을 하기 위해 교육을 받고 있다. 그는 이 일을 아버지인 바로 이 사이드 알 비시로부터 물려받았다. 그의 자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죄수들을 처형하는 현장을 자주 보았기 때문에 사형을 집행하는 요령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부 바드르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사형을 집행하는 모습을 눈으로 본 순간을 가리켜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압둘라: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학교에 있을 때 나의 아버지가 메카에서 죄인들의 사형을 집행하게 되었다. 이 사형 집행은 국왕 앞에서 이루어 졌다. 장소는 알 하람모스크였다. 당시 나는 아주 어린 소년이었다. 사람들이 주변에서 하는 말들을 들으며 그 때 내 마음에 떠오른 생각은 소화기관을 제대로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왜냐면 당시 나는 학교에서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시험을 위해 공부해야 할 내용 가운데는 소화기관도 들어 있었다. 나는 시험을 보게 되면 선생님 앞에서 소화기관을 제대로 설명해야 했다. 아버지가 죄인의 목을 내려치고 순간 나는 그의 소화기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몸통에서 분리되 떨어진 목이 전부였다. 목이 붙어 있던 곳은 마치 폭포 같이 피가 솓구쳤다. 그 장면은 충격이었고, 그 때는 더 이상 보기가 어려웠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청했지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차차 그 모든 장면에 익숙해 졌다. 이것도 알라의 은혜이다.
사회자: 그간 일하면서 기억나는 점이 많겠는데, 좀 잔인해 보이는 장면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한다.
이러한 그의 인터뷰를 보면 그는 자신이 하는 사형집행이 잔인한 일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이 매우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세간에는 그를 매우 잔인한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칼을 꺼내 보였다.
"이 칼이 내가 처음 사형 집행에 사용했던 칼이다." 그러면서 그는 칼의 유래와 함께 칼의 종류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가 사용하는 칼의 이름은 조우하르인데 조우하르는 사형 집행에 사용되는 칼 가운데 가장 위력이 강한 칼이라고 한다. 아무리 많은 사람의 목을 베도 무뎌지지 않으며 베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명성이 자자한 칼이다. 그는 또 다른 칼을 꺼내들며 '이것도 조우하르이다. 물론 내가 가지고 있는 칼은 다 모양과 용도가 다르다. 나는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칼을 고른다. 수평으로 휘두를 때 위력을 발휘하는 칼이 있고, 반대로 수직으로 내려 칠 때 위력을 발휘하는 칼이 따로 있다.'라고 말하면서 실제로 칼을 휘두르는 시범을 보였다.
이쯤해서 투르키 알 아트얀 박사라는 사우디 아라비아 내무부에 근무하는 심리학자가 나왔다. "샤리아법에 의해 행해지는 사형집행은 모두 샤리아법에 근거한 것이고, 모든 사형은 칼로 집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교수형이나 총살형은 금지되어 있다. 과거 한 때 총살형이 집행되던 시절이 있었다. 처형되는 죄인 본인이나 가족이 원할 경우에 한해서 그랬던 적이 있다. 그러나 죄인은 죄에 합당한 고통을 느껴야 한다. 총살형을 당하면 고통을 느낄 시간이 없다. 죄인을 고통없이 죽이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그래서 지금은 모든 사형집행은 칼로 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는 사형집행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여러 명 있지만 정확하게 몇 명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일부 정보기관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6명 정도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는 파악된 사람만의 수이고 아직 파악되지 않은 사람까지 감안하면 이보다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숫자는 알기 어렵다. 사형집행은 반드시 메카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압둘라 알 비시 같은 사람들은 자주 출장을 다닌다. 그래서 출장에 대한 일과 후배 사형집행자를 교육시키는 일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러나 그는 충분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사형만 집행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코란의 율법의 규정에 따라 죄인의 손이나 다리를 절단하는 일도 한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한다. 도둑의 손을 자르는 일이나, 간통한 사람들의 팔이나 다리를자르는 것도 나의 일이다."
그러자 한 출연자가 물었다. "마취는 하나 팔이나 다리를 자를 때 마취를 하나 목을 자를 때는 마취를 안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
압둘라: 민간요법에 의한 마취제를 쓰지만 정식으로 마취주사를 놓지는 않는다. 그러나 목을 잘라 처형하는 경우는 전혀 마취를 하지 않는다.
사회자: 당신은 첫 사형집행을 기억하는가
압둘라: 물론 기억한다. 처음에 상관들이 드디어 알라의 징벌을 대행할 때가 왔다고 이야기 했을 때 솔직히 마음으로 놀랬다. 그러나 나는 문제 없습니다 라고 말하고 아버지의 칼을 들었다. 내가 이 일을 잘해야만 아버지께서 알라신의 곁에서 안식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니 힘이 났다.
사회자; 올해 몇 살인가
압둘라: 정확히는 모른다. 32살 아니면 35살일 것이다.
사회자: 요즘 사형을 집행할 때의 심경은
압둘라: 누구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긴장하고 떨리는 법이다. 그러나 그 긴장과 떨림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는 것이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내 손에 죽은 친구들도 많다. 나는 내 손으로 그들을 죽이면서 그들이 비록 친구이지만 조금도 동정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은 죄인이기 때문이고, 만일 조금이라도 마음 속에 동정이 있으면 그들을 죽일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자: 리야드의 한 시청자가 꼭 물어 봐 달라고 한 질문이다. 남성과 여성을 함께 처형하거나 여성을 처형한 적이 있는지 여성과 남성을 처형할 때의 느낌은 다른지 같은지
압둘라: 처형은 처형이다. 죄수들은 이미 공포에 질려 온몸에 힘이 빠져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기 때문에 처형하는 것은 쉽다.
사회자: 여성에게도 전혀 동정심이 안느꺼지나
압둘라: 누구에게나 동정심은 느낀다. 많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그리 큰 동정심은 없다. 앞서 말했듯이 동정심이 앞서면 처형을 못한다.
사회자: 한꺼번에 여럿을 처형하면 마음이 어떤가 한 사람을 처형하고 다음 사람을 처형하기까지 좀 휴식을 갖는가 아니면 순서대로 조금도 쉬지 않고 모두 처형하는가
압둘라: 내가 하는 일은 알라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이다. 한꺼번에 여럿 죽인다고해서 특별히 다를 것은 없다. 처형은 처형이다. 한꺼번에 다 해치우는 것이 훨씬 편하고 쉽다.
사회자: 소문에 의하면 여러 명을 한꺼번에 처형하던 도중 칼이 부러져 처형이 중단되었던 적이 있다던데
압둘라: 칼이 부러진 것이 아니고 손잡이가 빠진 것이다.
사회자: 당신의 장남 바드르나 다른아들들에게도 같은 일을 시키려 하고 있다. 특히 이 일을 아들들에게 물려주려는 이유가 있는가
압둘라: 알라신에게 영광돌리는 일이다. 바드르는 이미 리야드에서 사형집행인으로 일하고 있다. (중략) 내가 말한 대로 이 일을 하는데 별다른 어려운 점은 없다. 일단 임무가 떨어지면 신속정확하게 해치우면 된다.
사회자: 당신의 다른 일상은 어떤가
압둘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 일찍 일어나고 정해진 기도시간에 기도한다.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음식을 먹는다. 아침을 먹으면 경찰에서 지급한 출퇴근 차량이 나를 데리러 온다. 그리고 출근을 한다. 퇴근 시간이 되면 퇴근을 한다.
사회자: 처형될 예정이 잡힌 죄수의 가족들과 접촉하는 경우가 있나
압둘라: 있다. 나는 그들에게 죄인이 알라신의 징벌을 받는 것이므로 나나 경찰들에게 사적인 원한의 감정을 갖지 말라고 말한다. 신께 감사드릴 것은 그들 가족들이 나의 이런 충고를 대개는 선선히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다음의 내용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사형 현장에서 사형을 집행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TV에 직접 출연하여 인터뷰 한 내용이다. 미리 이야기해 둘 것은 그의 인터뷰 내용이 매우 과격하고 표현도 정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내용은 독자들이 사우디 아라비아의 독특한 종교적 문화적 특성을 느끼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기독교에 대해서 조금의 관용도 베풀지 않고 철저하게 박해하는 나라로 유명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몇 년 동안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의식해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설혹 발견되더라도 사형을 집행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우디 아라비아는 기독교인 등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발견되면 사형에 처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환경은 전혀 변함이 없다.
사회자: 오늘 소개할 분은 우리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사형집행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유명한 압둘라 빈 사이드 알 비시씨이다. 이 분의 칼의 움직임은 진지함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는 일단 일이 주어지면 타협이 없다.
압둘라 알 비시(이하 압둘라): 내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1991년 쯤 그러니까 나의 아버지가 사망하고 열흘 쯤 지난 후부터이다. 나의 일을 감독하는 사람들은 나의 일을 임무라고 말한다. 알라신에게 영광돌리는 임무라는 것이다. 나는 형을 집행할 때 아버지가 유물로 남긴 칼을 사용한다. 아버지는 이러한 나를 보며 알라신의 곁에서 평화롭게 안식하실 것이다. 나의 일은 아버지와 알라신을 모두 기쁘게 하는 일이다. 내의 첫 사형집행은 세명을 한꺼번에 처형하는 일이었다.
사회자: 아부 바데르(또 다른 출연자)의 칼은 수백 명의 머리를 잘랐다. 그의 장남인 바드르도 같은 일을 하기 위해 교육을 받고 있다. 그는 이 일을 아버지인 바로 이 사이드 알 비시로부터 물려받았다. 그의 자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죄수들을 처형하는 현장을 자주 보았기 때문에 사형을 집행하는 요령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부 바드르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사형을 집행하는 모습을 눈으로 본 순간을 가리켜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압둘라: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학교에 있을 때 나의 아버지가 메카에서 죄인들의 사형을 집행하게 되었다. 이 사형 집행은 국왕 앞에서 이루어 졌다. 장소는 알 하람모스크였다. 당시 나는 아주 어린 소년이었다. 사람들이 주변에서 하는 말들을 들으며 그 때 내 마음에 떠오른 생각은 소화기관을 제대로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왜냐면 당시 나는 학교에서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시험을 위해 공부해야 할 내용 가운데는 소화기관도 들어 있었다. 나는 시험을 보게 되면 선생님 앞에서 소화기관을 제대로 설명해야 했다. 아버지가 죄인의 목을 내려치고 순간 나는 그의 소화기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몸통에서 분리되 떨어진 목이 전부였다. 목이 붙어 있던 곳은 마치 폭포 같이 피가 솓구쳤다. 그 장면은 충격이었고, 그 때는 더 이상 보기가 어려웠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청했지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차차 그 모든 장면에 익숙해 졌다. 이것도 알라의 은혜이다.
사회자: 그간 일하면서 기억나는 점이 많겠는데, 좀 잔인해 보이는 장면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한다.
이러한 그의 인터뷰를 보면 그는 자신이 하는 사형집행이 잔인한 일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이 매우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세간에는 그를 매우 잔인한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칼을 꺼내 보였다.
"이 칼이 내가 처음 사형 집행에 사용했던 칼이다." 그러면서 그는 칼의 유래와 함께 칼의 종류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가 사용하는 칼의 이름은 조우하르인데 조우하르는 사형 집행에 사용되는 칼 가운데 가장 위력이 강한 칼이라고 한다. 아무리 많은 사람의 목을 베도 무뎌지지 않으며 베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명성이 자자한 칼이다. 그는 또 다른 칼을 꺼내들며 '이것도 조우하르이다. 물론 내가 가지고 있는 칼은 다 모양과 용도가 다르다. 나는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칼을 고른다. 수평으로 휘두를 때 위력을 발휘하는 칼이 있고, 반대로 수직으로 내려 칠 때 위력을 발휘하는 칼이 따로 있다.'라고 말하면서 실제로 칼을 휘두르는 시범을 보였다.
이쯤해서 투르키 알 아트얀 박사라는 사우디 아라비아 내무부에 근무하는 심리학자가 나왔다. "샤리아법에 의해 행해지는 사형집행은 모두 샤리아법에 근거한 것이고, 모든 사형은 칼로 집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교수형이나 총살형은 금지되어 있다. 과거 한 때 총살형이 집행되던 시절이 있었다. 처형되는 죄인 본인이나 가족이 원할 경우에 한해서 그랬던 적이 있다. 그러나 죄인은 죄에 합당한 고통을 느껴야 한다. 총살형을 당하면 고통을 느낄 시간이 없다. 죄인을 고통없이 죽이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그래서 지금은 모든 사형집행은 칼로 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는 사형집행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여러 명 있지만 정확하게 몇 명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일부 정보기관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6명 정도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는 파악된 사람만의 수이고 아직 파악되지 않은 사람까지 감안하면 이보다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숫자는 알기 어렵다. 사형집행은 반드시 메카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압둘라 알 비시 같은 사람들은 자주 출장을 다닌다. 그래서 출장에 대한 일과 후배 사형집행자를 교육시키는 일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러나 그는 충분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사형만 집행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코란의 율법의 규정에 따라 죄인의 손이나 다리를 절단하는 일도 한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한다. 도둑의 손을 자르는 일이나, 간통한 사람들의 팔이나 다리를자르는 것도 나의 일이다."
그러자 한 출연자가 물었다. "마취는 하나 팔이나 다리를 자를 때 마취를 하나 목을 자를 때는 마취를 안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
압둘라: 민간요법에 의한 마취제를 쓰지만 정식으로 마취주사를 놓지는 않는다. 그러나 목을 잘라 처형하는 경우는 전혀 마취를 하지 않는다.
사회자: 당신은 첫 사형집행을 기억하는가
압둘라: 물론 기억한다. 처음에 상관들이 드디어 알라의 징벌을 대행할 때가 왔다고 이야기 했을 때 솔직히 마음으로 놀랬다. 그러나 나는 문제 없습니다 라고 말하고 아버지의 칼을 들었다. 내가 이 일을 잘해야만 아버지께서 알라신의 곁에서 안식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니 힘이 났다.
사회자; 올해 몇 살인가
압둘라: 정확히는 모른다. 32살 아니면 35살일 것이다.
사회자: 요즘 사형을 집행할 때의 심경은
압둘라: 누구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긴장하고 떨리는 법이다. 그러나 그 긴장과 떨림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는 것이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내 손에 죽은 친구들도 많다. 나는 내 손으로 그들을 죽이면서 그들이 비록 친구이지만 조금도 동정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은 죄인이기 때문이고, 만일 조금이라도 마음 속에 동정이 있으면 그들을 죽일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자: 리야드의 한 시청자가 꼭 물어 봐 달라고 한 질문이다. 남성과 여성을 함께 처형하거나 여성을 처형한 적이 있는지 여성과 남성을 처형할 때의 느낌은 다른지 같은지
압둘라: 처형은 처형이다. 죄수들은 이미 공포에 질려 온몸에 힘이 빠져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기 때문에 처형하는 것은 쉽다.
사회자: 여성에게도 전혀 동정심이 안느꺼지나
압둘라: 누구에게나 동정심은 느낀다. 많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그리 큰 동정심은 없다. 앞서 말했듯이 동정심이 앞서면 처형을 못한다.
사회자: 한꺼번에 여럿을 처형하면 마음이 어떤가 한 사람을 처형하고 다음 사람을 처형하기까지 좀 휴식을 갖는가 아니면 순서대로 조금도 쉬지 않고 모두 처형하는가
압둘라: 내가 하는 일은 알라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이다. 한꺼번에 여럿 죽인다고해서 특별히 다를 것은 없다. 처형은 처형이다. 한꺼번에 다 해치우는 것이 훨씬 편하고 쉽다.
사회자: 소문에 의하면 여러 명을 한꺼번에 처형하던 도중 칼이 부러져 처형이 중단되었던 적이 있다던데
압둘라: 칼이 부러진 것이 아니고 손잡이가 빠진 것이다.
사회자: 당신의 장남 바드르나 다른아들들에게도 같은 일을 시키려 하고 있다. 특히 이 일을 아들들에게 물려주려는 이유가 있는가
압둘라: 알라신에게 영광돌리는 일이다. 바드르는 이미 리야드에서 사형집행인으로 일하고 있다. (중략) 내가 말한 대로 이 일을 하는데 별다른 어려운 점은 없다. 일단 임무가 떨어지면 신속정확하게 해치우면 된다.
사회자: 당신의 다른 일상은 어떤가
압둘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 일찍 일어나고 정해진 기도시간에 기도한다.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음식을 먹는다. 아침을 먹으면 경찰에서 지급한 출퇴근 차량이 나를 데리러 온다. 그리고 출근을 한다. 퇴근 시간이 되면 퇴근을 한다.
사회자: 처형될 예정이 잡힌 죄수의 가족들과 접촉하는 경우가 있나
압둘라: 있다. 나는 그들에게 죄인이 알라신의 징벌을 받는 것이므로 나나 경찰들에게 사적인 원한의 감정을 갖지 말라고 말한다. 신께 감사드릴 것은 그들 가족들이 나의 이런 충고를 대개는 선선히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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