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의 알카에다(1)
알제리에서 이슬람무장활동은 종식되었다는 것이 알제리 정부의 공식입장이다. 알제리 정부는 작년 여름에 20년간이나 계속되던 이슬람무장세력과의 내전은 완전히 끝났다고 선언한바 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정부가 내전 종식을 선언한 직후 이슬람무장세력은 알카에다와의 동맹을 선언하고, 앞으로 대대적인 공세를 통해 자신들의 부활을 입증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의 정치적 폭력과 테러에 의해 최소한 165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알제리의 가장 강력한 이슬람무장단체인 이슬라믹 마그레브는 아예 이름을 알카에다로 바꿔 버렸다. 또한 이 단체는 그 활동영역을 알제리 뿐 아니라 북아프리카 전체로 확대하고 있다.
Salafist Group for Preaching and Combat 이라는 이슬람무장단체는 이 단체의 프랑스식 이름의 이니셜을 따라 흔히 GSPC라고 불리는 단체이다. 이 단체는 알제리에서는 이슬라믹 마그레브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알카에다의 2인자인 아이만 자와히리는 이 단체가 알카에다와 공식적인 동맹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그가 이와 같은 발표를 한 날은 911테러의 5주년인 2006년 9월 11일이었다. 이후 2007년 1월에 이 단체는 이름을 아예 알카에다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이 단체가 이름을 새롭게 바꾸고 그 세력을 확대한 후부터 이 단체의 폭력활동도 과거보다는 훨씬 왕성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3월에는 알제리의 수도 알제이에서 폭탄테러 사건을 벌여 33명을 살해하기도 했다. 이는 알제이에서 5년 만에 벌어진 대규모 폭탄테러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단체가 알카에다와의 연계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훨씬 전부터 알제리의 극렬 이슬람단체가 오사마 빈라덴과 연계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우선 알제리에서 GSPC를 설립한 최고 지도자는 과거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시절에 알카에다의 일원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대소항쟁에 참여한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당시 이 대소항쟁은 알카에다를 세계 최대 테러조직으로 성장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한참 세월이 흐른 후인 1998년에 알제리무장이슬람그룹(GIA)로부터 GSPC가 분리되어 독립했다. 이 즈음 알카에다의 최고위 인사가 은밀히 알제리를 방문해 새로 출범한 GIA의 지도자들을 만났고 이 자리에서 약 4만 달러 상당의 공작자금이 건네졌다.
1992년에 있었던 대통령선거에서 이슬람강경파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정부는 선거 무효를 선언했다. 이를 구실로 알카에다의 후원을 받는 GIA는 알제리 정부를 대항하여 치열한 무력투쟁을 전개했다. 정부군과 GIA 사이의 내전은 끝내 화력이 우세한 정부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고, GIA는 국제사회의 중재를 받아들여 일단 휴전에 들어갔으나 이미 15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뒤였다. 비록 정부군에게 밀리기는 했으나 이 투쟁을 계기로 그들의 잔혹한 명성은 충분히 대중들에게 각인되었다. 또 이들의 잔인성으로 말미암아 세계의 이슬람지하드주의자들로부터도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이들에게 자금을 지원한 빈라덴 역시 지나친 잔인성을 비판한 인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빈라덴은 알제리의 친구들이 “성전”에 대한 좋지 못한 이미지 를 대중들에게 각인시켜 주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이 때를 전후하여 GIA가 알카에다와 결별했고, 지도부의 지나친 강경노선에 불만을 품은 일부 중간보스급들이 이 단체를 이탈하여 독립한 것으로 보고 있다. GSPC가 설립된 시점도 이즈음이다.
현재 알카에다라고 이름을 바군 이슬라믹 마그레브에 속해 활동하는 테러리스트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는 제대로 파악되어 있지 않다. 정부는 약 800 명 정도로 보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보다는 훨씬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워싱턴에 이는 국제테러연구소의 리타 케이츠도 그렇게 보고 있다. 리타 케이츠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단체가 확장일로에 있다는 것이다. 알카에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출범한 이후 이슬람 지하드 세력 사이에서의 이 단체의 위상도 높아졌고, 그만큼 재정도 풍부해졌고, 인원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단체의 지도자는 아부 무사브 아브델 와도우드이다. 아브델말렉 드로우크델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1월의 연설을 통해 알제리보안군에 대한 강도 높은 무장투쟁과 함께 알카에다의 이름을 기치로 알제리 내의 외국인들에 대한 위협적인 테러를 벌일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는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 등에서 미국, 프랑스, 이스라엘, NATO 등을 상대로 벌이는 강력한 무장투쟁에 대한 지지의사도 함께 피력했다. 그는 또 알제리의 아브델아지즈 보우테플리카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들 서방의 적성국들의 친구이며 반드시 권좌에서 축출하여 샤리아법에 의해 단죄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이 단체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알제리에서 이슬람무장활동은 종식되었다는 것이 알제리 정부의 공식입장이다. 알제리 정부는 작년 여름에 20년간이나 계속되던 이슬람무장세력과의 내전은 완전히 끝났다고 선언한바 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정부가 내전 종식을 선언한 직후 이슬람무장세력은 알카에다와의 동맹을 선언하고, 앞으로 대대적인 공세를 통해 자신들의 부활을 입증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의 정치적 폭력과 테러에 의해 최소한 165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알제리의 가장 강력한 이슬람무장단체인 이슬라믹 마그레브는 아예 이름을 알카에다로 바꿔 버렸다. 또한 이 단체는 그 활동영역을 알제리 뿐 아니라 북아프리카 전체로 확대하고 있다.
Salafist Group for Preaching and Combat 이라는 이슬람무장단체는 이 단체의 프랑스식 이름의 이니셜을 따라 흔히 GSPC라고 불리는 단체이다. 이 단체는 알제리에서는 이슬라믹 마그레브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알카에다의 2인자인 아이만 자와히리는 이 단체가 알카에다와 공식적인 동맹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그가 이와 같은 발표를 한 날은 911테러의 5주년인 2006년 9월 11일이었다. 이후 2007년 1월에 이 단체는 이름을 아예 알카에다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이 단체가 이름을 새롭게 바꾸고 그 세력을 확대한 후부터 이 단체의 폭력활동도 과거보다는 훨씬 왕성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3월에는 알제리의 수도 알제이에서 폭탄테러 사건을 벌여 33명을 살해하기도 했다. 이는 알제이에서 5년 만에 벌어진 대규모 폭탄테러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단체가 알카에다와의 연계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훨씬 전부터 알제리의 극렬 이슬람단체가 오사마 빈라덴과 연계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우선 알제리에서 GSPC를 설립한 최고 지도자는 과거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시절에 알카에다의 일원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대소항쟁에 참여한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당시 이 대소항쟁은 알카에다를 세계 최대 테러조직으로 성장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한참 세월이 흐른 후인 1998년에 알제리무장이슬람그룹(GIA)로부터 GSPC가 분리되어 독립했다. 이 즈음 알카에다의 최고위 인사가 은밀히 알제리를 방문해 새로 출범한 GIA의 지도자들을 만났고 이 자리에서 약 4만 달러 상당의 공작자금이 건네졌다.
1992년에 있었던 대통령선거에서 이슬람강경파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정부는 선거 무효를 선언했다. 이를 구실로 알카에다의 후원을 받는 GIA는 알제리 정부를 대항하여 치열한 무력투쟁을 전개했다. 정부군과 GIA 사이의 내전은 끝내 화력이 우세한 정부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고, GIA는 국제사회의 중재를 받아들여 일단 휴전에 들어갔으나 이미 15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뒤였다. 비록 정부군에게 밀리기는 했으나 이 투쟁을 계기로 그들의 잔혹한 명성은 충분히 대중들에게 각인되었다. 또 이들의 잔인성으로 말미암아 세계의 이슬람지하드주의자들로부터도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이들에게 자금을 지원한 빈라덴 역시 지나친 잔인성을 비판한 인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빈라덴은 알제리의 친구들이 “성전”에 대한 좋지 못한 이미지 를 대중들에게 각인시켜 주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이 때를 전후하여 GIA가 알카에다와 결별했고, 지도부의 지나친 강경노선에 불만을 품은 일부 중간보스급들이 이 단체를 이탈하여 독립한 것으로 보고 있다. GSPC가 설립된 시점도 이즈음이다.
현재 알카에다라고 이름을 바군 이슬라믹 마그레브에 속해 활동하는 테러리스트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는 제대로 파악되어 있지 않다. 정부는 약 800 명 정도로 보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보다는 훨씬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워싱턴에 이는 국제테러연구소의 리타 케이츠도 그렇게 보고 있다. 리타 케이츠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단체가 확장일로에 있다는 것이다. 알카에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출범한 이후 이슬람 지하드 세력 사이에서의 이 단체의 위상도 높아졌고, 그만큼 재정도 풍부해졌고, 인원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단체의 지도자는 아부 무사브 아브델 와도우드이다. 아브델말렉 드로우크델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1월의 연설을 통해 알제리보안군에 대한 강도 높은 무장투쟁과 함께 알카에다의 이름을 기치로 알제리 내의 외국인들에 대한 위협적인 테러를 벌일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는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 등에서 미국, 프랑스, 이스라엘, NATO 등을 상대로 벌이는 강력한 무장투쟁에 대한 지지의사도 함께 피력했다. 그는 또 알제리의 아브델아지즈 보우테플리카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들 서방의 적성국들의 친구이며 반드시 권좌에서 축출하여 샤리아법에 의해 단죄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이 단체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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