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트리아 탈출자들, 수단 지역 사막에서 목숨을 건 여행
수단의 에리트리아 접경의 사막의 볼모지대에서는 매일 에리트리아를 탈출하여 국경을 넘은 사람들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우선 에리트리아 정부군은 이들 탈출자들을 색출해 내기 위해 삼엄한 순찰을 계속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국경을 넘어 수단으로 넘어가려다가 발각된 자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 약 400 - 600 명 가량의 에리트리아인들이 국경을 넘어 죽음의 여행에 나선다. 이들의 탈출 이유는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넘는다. 에리트리아는 에티오피아와 영토분쟁을 벌이고 실제로 전쟁도 했었다. 전쟁은 2000년에 끝났지만 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 파탄에 이른 경제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군비지출을 해야한다.
또 징병을 피해서 탈출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징집되면 고된 훈련을 받고 막강한 에티오피아군과 전투를 벌여야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국지적인 무력 충돌은 자주 벌어진다. 가장 많은 탈출의 이유는 정치적인 압제이다. 에리트리아는 1당독재국가이다. 어떤 종류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도 없는 나라이다. 국제사면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반정부 세력을 지지하다가 발각되면, 무기한의 구금과 고문을 당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하일레(가명)가 겪은 이야기를 보면 이들 탈출자들이 어떤 고난을 당하는지를 잘 알수 있다. 현재 그는 리비아에 있다. 그곳에 가기까지 그는 수단쪽 국경을 넘은 후 무려 5천 km에 달하는 기나긴 고난의 여행을 거쳐야 했다.
하일레는 국제기구의 통역원으로 일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국가기밀을 누설하고
그 대가를 받았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에리트리아 정부는 UN이나 국제구호기구, 외국대사관 등에서 일하는 자국인들이 의심스럽거나 맘에 들지 않거나 고분고분하게 협조하지 않을 경우 상습적으로 기밀누설혐의를 뒤집어 씌워 구속한다. “그들은 나에게 왜 외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냐고 물었고, 나는 내가 통역원이니 그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답했다. 알아듣게 설명하고 대답했지만 그들은 의도적으로 내 말을 무시했다. 그들은 별다른 근거도 없는 억지논리로 내가 외국인들에게 나라를 팔아먹는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그들은 내가 외국인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전혀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내가 외국인들과 나눈 대화 내용 가운데 국가기밀이 들어 있다고 우기고 있다. 결국 나는 2개월이나 갇혀 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아무 이유 없이 구속된 사람이 너무 많다.”
그는 자신이 구금되어 있는 동안 거의 죽을 정도로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다른 교도소로 이감되게 되었고 이 때 탈출의 기회가 왔다. 자신을 포함한 일단의 구속자들이 집단탈주를 감행했다. 일부는 다시 체포되었지만, 과거 10년 이상 에리트리아군에 복무했던 경력으로 인해 군인들의 수색작전의 패턴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그는 수색을 피해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함께 탈출한 일행과 함께 밤을 이용해 서쪽으로 계속 걸어 수단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삼엄한 경비병력을 뚫고 국경을 넘기는 했지만 국경을 넘자마자 수단군에게 검거 되었다. 그들은 석방을 대가로 돈을 요구했다.
“그들은 우리 일행을 구타하고, 돈을 요구하며 주머니를 일일이 수색했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가 영양가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우리를 풀어주었다. 결국 우리는 수단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들은 지나가는 버스에 사정해 얻어타고 수단의 수도 카르툼까지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수단에는 이미 12 만 명이나 되는 에리트리아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정식 이민, 혹은 취업 등의 절차를 통해 수단에 정착한 사람도 있지만, 지난 30년 동안 에티오피아로부터의 독립전쟁, 독립 이후의 국경분쟁 등등의 와중에서 하이레처럼 불법 월경한 사람들이다.
하이레의 경우는 이미 가족 가운데 일부가 카르툼에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르툼은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다. 하이레의 경우 과거 외국 기관의 통역 일을 했던 전력 때문에, 에리트리아 정부에서 파견된 요원들이 수단의 협조를 받아 그를 체포하기 위해 카르툼에 들어왔다. 그는 또 다른 체포와 구금을 피해 몇몇 사람들과 함께 돈을 모아 트럭을 얻어 다시 리비아 국경을 넘었다. 그러나 길을 잘못 들어 사하라 사막 한복판으로 트럭을 몰았고, 트럭은 고장 나버렸다.
“비록 트럭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해도, 트럭 한 대에 의지해서 광대한 사하라사막을 가로질러 건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가지고 있던 물도 떨어지고, 트럭도 고장 나버렸다. 3일 밤낮을 헤맸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운전기사는 휴대전화로 어떻게든 구조를 요청하려고 했지만 위성과의 연결상태가 좋지 않아 그것도 어렵다. 그 와중에서 일행 세 명이 사망했다. 또 사하라사막을 헤매는 가운데 먼저 사하라사막을 헤메다가 죽은 시신들을 무수히 볼 수 있었다.” 하일레 일행은 세 명의 동료들을 사막에 대충 묻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장난 트럭 안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사흘을 그렇게 기다리는데 나흘째에 또 다른 트럭이 지나가는 것을 구사일생으로 발견했다. 그렇게 해서 사하라 사막 한 복판에서 조난당한지 6일 만에 리비아 동남부의 쿠프라 오아시스 지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쿠프라는 에리트리아나 카르툼에 비하면 별천지였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그 곳에도 에리트리아 출신 불법 입국자로 골치를 앓고 있었기 때문에 잡히면 구속이었다. 잡히지 않으려면 빨리 돈을 써서 배편을 마련하여 지중해의 말타나 이탈리아로 또 다시 밀항을 감행하는 수밖에 없다. 그는 아직 리비아에 있다. 그는 떠나온 고향을 그리면서도 고향이 아닌 다른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도를 찾고 있는 중이다.
또 징병을 피해서 탈출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징집되면 고된 훈련을 받고 막강한 에티오피아군과 전투를 벌여야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국지적인 무력 충돌은 자주 벌어진다. 가장 많은 탈출의 이유는 정치적인 압제이다. 에리트리아는 1당독재국가이다. 어떤 종류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도 없는 나라이다. 국제사면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반정부 세력을 지지하다가 발각되면, 무기한의 구금과 고문을 당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하일레(가명)가 겪은 이야기를 보면 이들 탈출자들이 어떤 고난을 당하는지를 잘 알수 있다. 현재 그는 리비아에 있다. 그곳에 가기까지 그는 수단쪽 국경을 넘은 후 무려 5천 km에 달하는 기나긴 고난의 여행을 거쳐야 했다.
하일레는 국제기구의 통역원으로 일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국가기밀을 누설하고
그는 자신이 구금되어 있는 동안 거의 죽을 정도로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다른 교도소로 이감되게 되었고 이 때 탈출의 기회가 왔다. 자신을 포함한 일단의 구속자들이 집단탈주를 감행했다. 일부는 다시 체포되었지만, 과거 10년 이상 에리트리아군에 복무했던 경력으로 인해 군인들의 수색작전의 패턴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그는 수색을 피해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함께 탈출한 일행과 함께 밤을 이용해 서쪽으로 계속 걸어 수단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삼엄한 경비병력을 뚫고 국경을 넘기는 했지만 국경을 넘자마자 수단군에게 검거 되었다. 그들은 석방을 대가로 돈을 요구했다.
“그들은 우리 일행을 구타하고, 돈을 요구하며 주머니를 일일이 수색했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가 영양가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우리를 풀어주었다. 결국 우리는 수단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들은 지나가는 버스에 사정해 얻어타고 수단의 수도 카르툼까지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수단에는 이미 12 만 명이나 되는 에리트리아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정식 이민, 혹은 취업 등의 절차를 통해 수단에 정착한 사람도 있지만, 지난 30년 동안 에티오피아로부터의 독립전쟁, 독립 이후의 국경분쟁 등등의 와중에서 하이레처럼 불법 월경한 사람들이다.
하이레의 경우는 이미 가족 가운데 일부가 카르툼에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르툼은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다. 하이레의 경우 과거 외국 기관의 통역 일을 했던 전력 때문에, 에리트리아 정부에서 파견된 요원들이 수단의 협조를 받아 그를 체포하기 위해 카르툼에 들어왔다. 그는 또 다른 체포와 구금을 피해 몇몇 사람들과 함께 돈을 모아 트럭을 얻어 다시 리비아 국경을 넘었다. 그러나 길을 잘못 들어 사하라 사막 한복판으로 트럭을 몰았고, 트럭은 고장 나버렸다.
“비록 트럭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해도, 트럭 한 대에 의지해서 광대한 사하라사막을 가로질러 건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가지고 있던 물도 떨어지고, 트럭도 고장 나버렸다. 3일 밤낮을 헤맸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운전기사는 휴대전화로 어떻게든 구조를 요청하려고 했지만 위성과의 연결상태가 좋지 않아 그것도 어렵다. 그 와중에서 일행 세 명이 사망했다. 또 사하라사막을 헤매는 가운데 먼저 사하라사막을 헤메다가 죽은 시신들을 무수히 볼 수 있었다.” 하일레 일행은 세 명의 동료들을 사막에 대충 묻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장난 트럭 안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사흘을 그렇게 기다리는데 나흘째에 또 다른 트럭이 지나가는 것을 구사일생으로 발견했다. 그렇게 해서 사하라 사막 한 복판에서 조난당한지 6일 만에 리비아 동남부의 쿠프라 오아시스 지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쿠프라는 에리트리아나 카르툼에 비하면 별천지였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그 곳에도 에리트리아 출신 불법 입국자로 골치를 앓고 있었기 때문에 잡히면 구속이었다. 잡히지 않으려면 빨리 돈을 써서 배편을 마련하여 지중해의 말타나 이탈리아로 또 다시 밀항을 감행하는 수밖에 없다. 그는 아직 리비아에 있다. 그는 떠나온 고향을 그리면서도 고향이 아닌 다른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도를 찾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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