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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현장뉴스/투르크메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샤파르무라트 니야조프 대통령 / 2006-12-26

투르크메니스탄의 독재자.샤파르무라트 니야조프는 1940년 투르크메니스탄 아슈하바트에서 가난한 노동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그의 부친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으로 참가하다 전사했고 나머지 가족들도 전부 사망하여 니야조프는 고아원과 친척집들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그리고 1962년 공산당에 입당한 니야조프는 이후 투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당 서기장을 지냈다.
그리고 소련의 붕괴가 있기 한 달전 1990년 니야조프는 투르크메니스탄 초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로 입출마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그리고 1991년 12월 소련이 공식으로 해체되어 투르크메니스탄이 정식 독립하자 니야조프는 이듬해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재당선을 달성하였다.한편 투르크메니스탄 공화국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 니야조프는 소련 시절 금지되어오던 투르크멘 인들의 민족주의 정신을 고취시키는 민족주의 정책들을 펼치게 되는데 이러한 그의 민족주의 정책들은 오랜 소련 시절 러시아 문화에 동화되어오던 투르크메니스탄 국민들의 민족주의 정체성 회복에 상당량 기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투르크메니스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어 투르크멘 민족의 민족주의 정체성을 고취시키고 장려하던 니야조프 대통령은 말년에 가면서 점차 권력의 단맛에 빠져들기 시작했다.그리고 1999년 니야조프는 개엄령을 발동하여 반대파 세력들을 투옥하여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기에 이르고 그는 급기야 독재자로서의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한편 1999년 개엄령을 통해 다시 대통령이 된 니야조프는 북한의 김일성,소련의 스탈린과 같이 자신을 투르크멘바시 즉 투르크멘 민족의 아버지로 자처하면서 개인숭배와 개인 우상화를 시도하게 되고 또한 루흐나마라는 경전을 발간하여 모든 국민들에게 이 경전을 강제적으로 읽게 만들었다.또한 투르크메니스탄의 기후를 무시한체 1000명이 들어갈수있는 얼음 궁전 건설을 지시하라하는가 하면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다는 이유로 오페라와 발레,록같은 서양음악들을 대통령령으로 금지시키기도 했다.또한 니야조프 대통령은 해외학위와 국가발전을 양립할수 없는 미명하에 외국에서 전문학을 취득한 전문 인력들을 상당수 해고조치시켜 국가 경제를 무너뜨리기도 하였다.이러한 니야조프의 개인우상화와 1인 독재 정치,온갗 기행들은 급기야 국제 사회의 비난을 사기에 이르렀지만 니야조프는 이러한 비난을 무시한체 독재 권력을 계속 유지하였고 급기야 니야조프 치하의 투르크메니스탄은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로부터 중앙 아시아의 북한이라는 오명까지쓰게 되었다..그러던 2006년 영원히 투르크메니스탄을 독재 권력으로 통치하여 천수를 누릴것만 같았던 니야조프는 12월 21일 새벽 심장병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죽자 온 투르크메니스탄 국민들이 그의 죽음을 환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