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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현장뉴스/전체일반

독재자들을 위한 기도(1) / 2007-06-14

독재자들을 위한 기도(1)

독재란 한 사람 혹은 소수의 그룹들이 한 나라를 통치하면서 이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자유로운 활동을 용납하지 않는 시스템이다.  이런 나라의 정부는 독재자 한 사람과 그를 추종하는 조력자들에 의해 완전하게 장악된다.  권력이 소수의 독재자들에게 집중되면 이를 저항하기는 매우 어려운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물론 다소 온건한 독재자들도 있다.  과거 필리핀의 페르난디드 마르코스와 멕시코의 포르피리오 디아즈 같은 통치자가 그러한 예이다.  이들은 처음의 출발은 온건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점점 그들의 권력을 강화하고 반대파들에게는 강경해졌고 결국은 살해되거나 국외로 도망쳐야 했다.  사람은 본성 안에 죄를 품고 있는 존재이다보니 항상 공의롭게만 행동할 수는 없는 존재이다.  그런 사람이 절대권력을 쥔다면 당연히 부패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있다.

독재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그 흔적을 같이 한다.  1700년대에 비로소 유럽으로부터 민주주의가 자라나기 전까지 거의 모든 나라의 모든 통치 시스템은 왕족을 중심으로 한 절대권력 체제였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200년 쯤 전에 시작되기 시작하면서 통치자의 역할과 통치자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도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를 넘어 21세기에 접어든 지금도 세계의 일각에서는 독재정부가 존재한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아직도 세계의 대부분의 국가의 정부는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독재정부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은 이들 독재정부와 독재자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아까지 말아야 한다.


1917년, 블라디미르 레닌은 러시아혁명을 일으켜 소련을 통치하는 권좌를 차지했다.  이 정부는 인류역사상 무신론을 주장하는 최초의 독재정권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레닌 시절의 독재통치는 그의 후게자인 조셉 스탈린의 학정으로 이어졌다.  역사가들과 국제시사 전문가들은 스탈린이 적어도 1천 300 만 명 가량의 양민들을 학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스탈린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 가운데는 기독교인들도 있었고, 스탈린 정부의 집단농장 정책에 반대하여 자신 소유의 농토를 지키려는 농부들도 있었다.  이처럼 스탈린의 정치적 목적에 희생되어 살해된 사람 말고도, 스탈린 시절의 농업생산량이 급감하면서 발생한 수만은 아사자들이 또 있다.  이는 스탈린 체제가 모든 농업생산을 집단농장을 통한 공동생산체제로 전환한 결과이다.

스탈린의 숙청 작업은 1939년까지 계속되었다.  1939년 들면서 아돌프 히틀러의 침략행위가 맹위를 떨치기 시작하면서 히틀러와 맞서야 하는 스탈린 정부는 숙청작업의 고삐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고, 독일의 군인들과 경찰은 유대인들을 색출해 대형수용소에 감금했다.  이러한 독일군의 유대인 사냥은 독일은 물론 독일군이 진주한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진행되었다.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하기까지 1200 만 명이나 되는 유럽인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어쨌든 히틀러의 악명은 600 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을 학살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히틀러의 학살대상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정신지체자, 동성연애자, 집시, 여호와의 증인 등도 히틀러 정권의 학살 대상이었다.  또 정치적으로 그의 노선에 동의하지 않거나! 반기를 든 사람들도 집단수용소에서 죽어갔다.  위대한 신학자인 디트리히 본훼퍼 같은 이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결국 역사는 히틀러를 학살자 랭킹 2위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1위는 누구인가?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학살자는 중국의 마오쩌뚱이다.  마오쩌뚱과 그를 추종하는 붉은군대가 중국의 통치권을 장악한 것은 1949년이다.  그는 집권하자마자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살해 명령을 내렸다.  이 때 수백 만 명이 살해되었는데 그 가운데는 기독교인들도 포함되었다.  일단 정권이 안정되자 그는 숙청작업의 종료를 선언했고, 평화로운 시기가 찾아온 듯 했다.  그러나 조용한 시간은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았다.  그는 문화혁명이라는 것을 주창하며 중국 사회의 급진적인 변혁을 주도했다.  문화혁명은 1966년부터 1969년까지 계속되면서 무려 1천 1백 만 명이나 되는 중국인들의 생명을 빼앗아 갔다. 

1976년 마오쩌뚱의 사망으로 그의 통치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유산은 지금도 중국 통치자들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그 후에도 중국 정부는 많은 인민들을 여러 가지 이유로 학살했고, 그 수는 같은 기간 동안 세계의 다른 곳에서 벌어진 권력에 의한 학살 피해를 다 합친 것보다 많다.  중국 정부에 의해 학살된 사람들 가운데는 대부분 좀도둑처럼 사안이 경미한 사람들이 많다.  이처럼 독재통치는 통치를 받는 사회에 크나큰 해악을 끼친다.  그러나 그 해악이 오직 안으로만 미치는 것은 아니다.  독재통치자들은 국민들의 결속을 강화하여 통치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자주 외국과 분쟁을 벌인다.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은 2차세계대전으로 발전했고, 공산주의를 세계로 확장시키겠다는 마오쩌뚱의 야심은 북한의 통치자 김일성을 자극하여 대한민국을 침공하도록 했다.  사담 후세인의 1980년의 이란 침공과 1990년의 쿠웨이트 침공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독재자들에 의해 시작된 전쟁은 독재자의 통치권 밖에 있는 다른 나라의 수많은 양민들의 생명까지 사지로 몰아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