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다시 살아나나?
한국에서 파병된 평화유지군 소속 윤장호 하사의 전사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지에 대해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때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잡고 집권했던 탈레반세력은 911테러의 배후로 지목되었고,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탈레반 정권을 축출했다. 이 때만해도 탈레반은 완전히 궤멸된 것처럼 보였고, 험준한 산악지대로 숨어든 잔당의 소탕과 지도자인 오마르와 빈 라덴의 체포는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최근 여러 가지 정세를 종합하여 검토해 볼 때 탈레반의 위세는 수도 카불 등 주요 도시만을 제외하고는 과거의 위세를 완전히 회복한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과거 탈레반의 통치 시절보다 오히려 더 혼란스럽다는 것이 현지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2001년 10월에 미국의 침공에 밀려 파키스탄과 접경한 산악지대에 피신한 탈레반은 이후 전열을 정비하고 게릴라전과 테러전을 병행하면서 조금씩 세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2006년 한해 동안 탈레반의 폭력사태와 테러 등으로 사망한 군과 민간인을 포함한 사람의 수는 4,400 명에 이르며 이는 전해의 두배가 넘는 숫자이다. 게다가 전술적으로도 게릴라전에서 폭탄테러 등 불특정 다수를 살상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민과 군의 이유 없는 희생은 계속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탈레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물라 하야툴라 칸은 "눈이 녹으면 2천 명 이상의 자살폭탄요원들을 투입해 미군과 외국군을 공격할 것"이라며 이른 바 춘계 대공세를 공언했다.
탈레반이 이처럼 궤멸의 위기를 딛고 화려하게 부활한 원인은 파키스탄의 강경 이슬람 세력의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탈레반이 은거하고 있는 국경지대는 워낙 험준한 산악지대여서 평화유지군이나 아프간군의 지배력이 전혀 미치지 못한다. 또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관료조직의 부정부패로 민심이 이반되어 탈레반에 기울고 있다. 이같은 주민의 호응을 기반으로 탈레반은 정부군과 평화유지군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오지에서부터 마을들을 하나씩 하나씩 야금야금 접수하면서 그 영향권을 서서히 농촌지역과 대도시 인근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현재의 상황은 카불을 비롯한 몇몇 대도시들만 섬처럼 고립되고 나머지 지역은 빠른 속도로 탈레반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양상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미군과 평화유지군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은 탈레반에 대한 새로운 호감과 함께 과거 장기간의 식민지 생활의 영향으로 평화유지와 재건이라는 명분을 내건 미군과 유럽군들 조차도 외세 점령군이라며 반감을 공공연하게 표현하고 있다. 민심이 미군과 평화유지군을 떠나 탈레반 측에 기울다보니 이번 윤장호 하사 전사사건의 경우에서 보듯이 체니 미국 부통령의 극비방문과 같은 기밀마저도 탈레반에게 흘러가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칸다하르나 헬만드 등 20 개가 넘는 지역에서는 일반 주민들은 물론 관료들까지도 탈레반을 지지하는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미국과 NATO도 파견병력의 전력을 강화해 탈레반에 대한 고삐를 강하게 죌지 아니면 발을 뺄지를 결정하지 못한채 어정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미군을 3,000명 가량 늘이기로 하고 NATO측에도 증원을 요청했으나 영국 이외에는 묵묵부답이다. 또 NATO회원국 사이의 갈등도 팀웍을 헤치고 있다. 미국과 영국, 카나다, 네덜란드 병력은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군이 안전한 지역에만 주둔하고 있다며 공공연하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게다가 평화와 재건이라는 명분으로 들어온 외국 군대가 별로 한 일이 없다는 것도 아프간 주민들의 불만이다. 이미 다국적군이 들어와 평화와 재건을 외치기 시작한지 6년이 지났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제대로 된 집도 없이 얼기설기 지은 움막과도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반면, 카이자르 대통령과 일부 관료들은 커다란 저택 안에서 귀족과 같은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또 NATO와 미군도 현지 주민들의 정서와는 상관 없이 본국에서와 같은 수준의 안락한 환경을 요구하고 있으니 민심을 얻을리가 없다. 한때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을 국민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비현실적인 이슬람율법통치만을 강요하며 혹독하게 군림하는 세력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어두운 기억은 사라지고 외세로부터 새로운 해방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에서 파병된 평화유지군 소속 윤장호 하사의 전사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지에 대해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때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잡고 집권했던 탈레반세력은 911테러의 배후로 지목되었고,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탈레반 정권을 축출했다. 이 때만해도 탈레반은 완전히 궤멸된 것처럼 보였고, 험준한 산악지대로 숨어든 잔당의 소탕과 지도자인 오마르와 빈 라덴의 체포는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최근 여러 가지 정세를 종합하여 검토해 볼 때 탈레반의 위세는 수도 카불 등 주요 도시만을 제외하고는 과거의 위세를 완전히 회복한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과거 탈레반의 통치 시절보다 오히려 더 혼란스럽다는 것이 현지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2001년 10월에 미국의 침공에 밀려 파키스탄과 접경한 산악지대에 피신한 탈레반은 이후 전열을 정비하고 게릴라전과 테러전을 병행하면서 조금씩 세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2006년 한해 동안 탈레반의 폭력사태와 테러 등으로 사망한 군과 민간인을 포함한 사람의 수는 4,400 명에 이르며 이는 전해의 두배가 넘는 숫자이다. 게다가 전술적으로도 게릴라전에서 폭탄테러 등 불특정 다수를 살상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민과 군의 이유 없는 희생은 계속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탈레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물라 하야툴라 칸은 "눈이 녹으면 2천 명 이상의 자살폭탄요원들을 투입해 미군과 외국군을 공격할 것"이라며 이른 바 춘계 대공세를 공언했다.
탈레반이 이처럼 궤멸의 위기를 딛고 화려하게 부활한 원인은 파키스탄의 강경 이슬람 세력의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탈레반이 은거하고 있는 국경지대는 워낙 험준한 산악지대여서 평화유지군이나 아프간군의 지배력이 전혀 미치지 못한다. 또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관료조직의 부정부패로 민심이 이반되어 탈레반에 기울고 있다. 이같은 주민의 호응을 기반으로 탈레반은 정부군과 평화유지군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오지에서부터 마을들을 하나씩 하나씩 야금야금 접수하면서 그 영향권을 서서히 농촌지역과 대도시 인근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현재의 상황은 카불을 비롯한 몇몇 대도시들만 섬처럼 고립되고 나머지 지역은 빠른 속도로 탈레반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양상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미군과 평화유지군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은 탈레반에 대한 새로운 호감과 함께 과거 장기간의 식민지 생활의 영향으로 평화유지와 재건이라는 명분을 내건 미군과 유럽군들 조차도 외세 점령군이라며 반감을 공공연하게 표현하고 있다. 민심이 미군과 평화유지군을 떠나 탈레반 측에 기울다보니 이번 윤장호 하사 전사사건의 경우에서 보듯이 체니 미국 부통령의 극비방문과 같은 기밀마저도 탈레반에게 흘러가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칸다하르나 헬만드 등 20 개가 넘는 지역에서는 일반 주민들은 물론 관료들까지도 탈레반을 지지하는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미국과 NATO도 파견병력의 전력을 강화해 탈레반에 대한 고삐를 강하게 죌지 아니면 발을 뺄지를 결정하지 못한채 어정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미군을 3,000명 가량 늘이기로 하고 NATO측에도 증원을 요청했으나 영국 이외에는 묵묵부답이다. 또 NATO회원국 사이의 갈등도 팀웍을 헤치고 있다. 미국과 영국, 카나다, 네덜란드 병력은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군이 안전한 지역에만 주둔하고 있다며 공공연하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게다가 평화와 재건이라는 명분으로 들어온 외국 군대가 별로 한 일이 없다는 것도 아프간 주민들의 불만이다. 이미 다국적군이 들어와 평화와 재건을 외치기 시작한지 6년이 지났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제대로 된 집도 없이 얼기설기 지은 움막과도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반면, 카이자르 대통령과 일부 관료들은 커다란 저택 안에서 귀족과 같은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또 NATO와 미군도 현지 주민들의 정서와는 상관 없이 본국에서와 같은 수준의 안락한 환경을 요구하고 있으니 민심을 얻을리가 없다. 한때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을 국민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비현실적인 이슬람율법통치만을 강요하며 혹독하게 군림하는 세력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어두운 기억은 사라지고 외세로부터 새로운 해방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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