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공불락의 땅에 은거하는 탈레반과 아프간피랍사태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몇 년째 계속되고 있는 미국의 토벌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최근에는 실지를 회복하여 아프가니스탄 땅의 과반 이상을 실제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탈레반 세력은 질긴 생명력을 지닌 집단이다. 이들이 미국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그들의 종교적 이념에 입각한 결사항전의 의지에도 원인이 있지만, 그들이 은거하고 있는 지역인 가즈니주의 독특한 지형적 특징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탈레반이라는 조직이 결성되기 이전, 즉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도, 이에 저항운동을 벌였던 무자헤딘 세력 역시 이 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결사항전을 벌인 끝에 결국 소련군의 철수를 이끌어 냈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BC 330년 경의 알렉산더대왕, 페르시아의 사만왕조, 가즈니왕조, 1219년의 몽골의 칭기즈칸도 이 지역을 넘본적이 있고, 실제로 점령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은 19세기 이후 서방강대국에게 좀처럼 굴복하지 않는 땅으로 유명하다. 당시 세계를 제패했던 영국은 세 차례에 걸쳐서 전략적 요충지인 아프가니스탄을 손에 넣기 위해 대대적인 공세를 벌였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1919년에 아프가니스탄의 독립을 승인했고, 소련은 1979년에 반소련 성향의 하피줄라 아민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으나 9년 만에 결국 철수했다. 미국 역시 911테러 이후 오사마빈 라덴의 신병 인도 요구를 거부하는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이 나라를 침공했다. 그 결과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고, 친미적인 카르자이정권을 세우는데는 성공했으나 탈레반은 반군으로써 여전히 건재하고 있고, 오히려 올해 들어서는 아프가니스탄의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장악하고 있는 영역과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군과 다국적군 640명이 사망했다.
이처럼 좀처럼 저항세력이 섬멸되지 않고 결국은 전열을 정비하고 반격하여 외세를 격퇴해 낸 역사의 이면에는 현재 그들이 본거지로 삶고 있는 가즈니주 등 탈레반 근거지의 지역적 특성을 들 수 있다. 워낙 험준하고 지형에 복잡하여, 서구의 최첨단 무기들이 별로 쓸모도 없고, 지형에 익숙하지 않은 미군은 지형을 십분 활용하여 게릴라전을 펼치고 어느 순간 사라져 숨어 버리는 탈레반을 상대로 별다른 효과적인 전과를 올리기 어려운 것이다. 거기에다가 주둔이 장기화되면서 본국에서는 파병철회와 철군의 압력에 시달리게 되면, 미군의 입장에서는 "과연 얼마나 더 이 곳에서 이들과 싸워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가 싹트게 되는 것이다. 반면 탈레반의 입장에서는 카르자이 현정권은 미국의 도움이 없으면 존립하기 어려운 정권이고, 미군이 무한정 아프간에 주둔할 수도 없다는 두 가지 명제로 인해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은거와 항전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몇 년째 계속되고 있는 미국의 토벌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최근에는 실지를 회복하여 아프가니스탄 땅의 과반 이상을 실제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탈레반 세력은 질긴 생명력을 지닌 집단이다. 이들이 미국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그들의 종교적 이념에 입각한 결사항전의 의지에도 원인이 있지만, 그들이 은거하고 있는 지역인 가즈니주의 독특한 지형적 특징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탈레반이라는 조직이 결성되기 이전, 즉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도, 이에 저항운동을 벌였던 무자헤딘 세력 역시 이 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결사항전을 벌인 끝에 결국 소련군의 철수를 이끌어 냈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BC 330년 경의 알렉산더대왕, 페르시아의 사만왕조, 가즈니왕조, 1219년의 몽골의 칭기즈칸도 이 지역을 넘본적이 있고, 실제로 점령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은 19세기 이후 서방강대국에게 좀처럼 굴복하지 않는 땅으로 유명하다. 당시 세계를 제패했던 영국은 세 차례에 걸쳐서 전략적 요충지인 아프가니스탄을 손에 넣기 위해 대대적인 공세를 벌였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1919년에 아프가니스탄의 독립을 승인했고, 소련은 1979년에 반소련 성향의 하피줄라 아민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으나 9년 만에 결국 철수했다. 미국 역시 911테러 이후 오사마빈 라덴의 신병 인도 요구를 거부하는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이 나라를 침공했다. 그 결과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고, 친미적인 카르자이정권을 세우는데는 성공했으나 탈레반은 반군으로써 여전히 건재하고 있고, 오히려 올해 들어서는 아프가니스탄의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장악하고 있는 영역과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군과 다국적군 640명이 사망했다.
이처럼 좀처럼 저항세력이 섬멸되지 않고 결국은 전열을 정비하고 반격하여 외세를 격퇴해 낸 역사의 이면에는 현재 그들이 본거지로 삶고 있는 가즈니주 등 탈레반 근거지의 지역적 특성을 들 수 있다. 워낙 험준하고 지형에 복잡하여, 서구의 최첨단 무기들이 별로 쓸모도 없고, 지형에 익숙하지 않은 미군은 지형을 십분 활용하여 게릴라전을 펼치고 어느 순간 사라져 숨어 버리는 탈레반을 상대로 별다른 효과적인 전과를 올리기 어려운 것이다. 거기에다가 주둔이 장기화되면서 본국에서는 파병철회와 철군의 압력에 시달리게 되면, 미군의 입장에서는 "과연 얼마나 더 이 곳에서 이들과 싸워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가 싹트게 되는 것이다. 반면 탈레반의 입장에서는 카르자이 현정권은 미국의 도움이 없으면 존립하기 어려운 정권이고, 미군이 무한정 아프간에 주둔할 수도 없다는 두 가지 명제로 인해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은거와 항전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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