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구자라트, 잊어서는 안되는 땅(2)
심구자라트주는 한때 집권당이었고 지금은 제1야당이며, 힌두교 원리주의 정당인 BJP가 90년대 중반부터 주정부를 집권하고 있다. 이 때부터 이슬람 신자들과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모든 박해는 주정부의 방조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1998년 한해 동안 공식적으로 파악된 힌두교도들에 의한 비힌두교도들에 의한 폭력사건은 모두 90건인데 이 가운데 38건이 구자라트주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1998년 12월에는 기독교인들이 이와 같은 기독교인들에 대한 폭력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전국적인 시위를 벌인 적이 있었다. 그러자 힌두교 광신자들은 성탄절에 맞춰서 대규모 가두시위를 벌이며, 힌두교인들의 각성을 요구하고, 모든 기독교 성직자들과 카톨릭 성직자, 수녀들을 강도로 규정하며 성토하기도 했다. 그들은 기독교계가 정부를 돈으로 구워 삶아 활동공간을 마련하고 지역 소수주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지금까지 수녀에 대한 성폭행, 기독교계 학교에 대한 공격, 교회에 대한 방화 등의 사건이 끊임 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처럼 박해가 점점 심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인도인 사역자들은 물론이고 외국인 선교사들도 구자라트에 선교사들이나 교회개척사역자들을 파송하기를 꺼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구자라트에 있는 수많은 이슬람 신자들이 있고 힌두교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세기가 넘도록 이 땅을 영적으로 방치해 놓고 사역자를 파송하지 못한다는 현실은 무척 괴로운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이상은 구자라트를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각성을 하기에 충분한 사건이 2002년에 발생했다.
2002년 2월 27일에 58 명의 힌두교인 순례자들을 태우고 가던 열차가 구자라트주의 고드라에서 방화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순례자들 전원이 사망했다. 그로부터 몇시간 지나지 않아 이 사건이 이슬람 과격파들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다음날 무장한 힌두교 과격 청년단체 소속의 젊은이들이 구자라트 최대 도시인 아흐메다바드에서 버스를 전복시켰다. 또 이슬람 신자들이 사는 가옥이나 사업장, 그리고 모스크들을 대거 파괴해 버렸다. 특히 2001년에 행한 인구센서스 자료를 탈취한 이들은 인구센서스 자료에 명기된 종교 관련 항목들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이슬람 신자들이 사는 가옥과 그들이 운영하는 사업체만 가려내서 파괴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집의 벽이 부서지고 기름이 끼얹어지고 불에 탔다. 폭도들은 이슬람 신자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휘발성이 강한 화학약품인 케로신을 마시게 하고 그들의 몸에 불을 붙이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임신한 여성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기도 했다. 폭도들이 무서워 직장의 창고 같은데에 숨어 있던 이슬람 남성들도 모조리 색출되어 처형되었다. 다행히 일부 재치 있는 이슬람 신자들은 자신들의 집이나 사업체의 건물 벽에 "람(힌두교의 신)이여 영원하라"라는 등의 구호를 페인트로 재빨리 적어 힌두교인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경찰들은 이러한 참극 속에서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저 피해상황을 확인하는 정도의 역할에 그쳤으며 일부 경찰들은 학살에 동참하기도 했다. 일부 양심적인 경찰이 힌두교 폭도들의 만행을 저지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잔인하게 살해당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무법천지의 참극은 3일 후에 군부대가 파견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당시의 사태에 대한 인도 당국의 공식통계는 사망자가 1천 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구자라트의 이슬람교계 지도자들은 사망자가 적어도 3만 명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힌두교 측이 열차전복사건의 원인을 지나치게 오해한데서부터 출발한 것이지만 구자라트 정부가 사태의 해결에 나서지 않고 수수방관하고 나가서 동조한 것에서 그 책임을 찾아야 한다. 일부 인권단체에서는 이 사태는 주정부에서 정교하게 배후 조종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들은 그 증거로 경찰과 공무원들이 사태를 진정시키기는커녕 대거 폭력에 동참한 점을 들고 있다. 그동안 구자라트주의 집권당인 BJP가 모든 다른 종교를 완전히 소멸시켜서 완전한 힌두교 사회를 만들려는 목적을 가지고 다양한 활동을 해 온 점을 감안하여 보면 이같은 지적도 무리는 아니다.
심구자라트주는 한때 집권당이었고 지금은 제1야당이며, 힌두교 원리주의 정당인 BJP가 90년대 중반부터 주정부를 집권하고 있다. 이 때부터 이슬람 신자들과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모든 박해는 주정부의 방조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1998년 한해 동안 공식적으로 파악된 힌두교도들에 의한 비힌두교도들에 의한 폭력사건은 모두 90건인데 이 가운데 38건이 구자라트주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1998년 12월에는 기독교인들이 이와 같은 기독교인들에 대한 폭력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전국적인 시위를 벌인 적이 있었다. 그러자 힌두교 광신자들은 성탄절에 맞춰서 대규모 가두시위를 벌이며, 힌두교인들의 각성을 요구하고, 모든 기독교 성직자들과 카톨릭 성직자, 수녀들을 강도로 규정하며 성토하기도 했다. 그들은 기독교계가 정부를 돈으로 구워 삶아 활동공간을 마련하고 지역 소수주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지금까지 수녀에 대한 성폭행, 기독교계 학교에 대한 공격, 교회에 대한 방화 등의 사건이 끊임 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처럼 박해가 점점 심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인도인 사역자들은 물론이고 외국인 선교사들도 구자라트에 선교사들이나 교회개척사역자들을 파송하기를 꺼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구자라트에 있는 수많은 이슬람 신자들이 있고 힌두교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세기가 넘도록 이 땅을 영적으로 방치해 놓고 사역자를 파송하지 못한다는 현실은 무척 괴로운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이상은 구자라트를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각성을 하기에 충분한 사건이 2002년에 발생했다.
2002년 2월 27일에 58 명의 힌두교인 순례자들을 태우고 가던 열차가 구자라트주의 고드라에서 방화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순례자들 전원이 사망했다. 그로부터 몇시간 지나지 않아 이 사건이 이슬람 과격파들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다음날 무장한 힌두교 과격 청년단체 소속의 젊은이들이 구자라트 최대 도시인 아흐메다바드에서 버스를 전복시켰다. 또 이슬람 신자들이 사는 가옥이나 사업장, 그리고 모스크들을 대거 파괴해 버렸다. 특히 2001년에 행한 인구센서스 자료를 탈취한 이들은 인구센서스 자료에 명기된 종교 관련 항목들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이슬람 신자들이 사는 가옥과 그들이 운영하는 사업체만 가려내서 파괴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집의 벽이 부서지고 기름이 끼얹어지고 불에 탔다. 폭도들은 이슬람 신자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휘발성이 강한 화학약품인 케로신을 마시게 하고 그들의 몸에 불을 붙이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임신한 여성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기도 했다. 폭도들이 무서워 직장의 창고 같은데에 숨어 있던 이슬람 남성들도 모조리 색출되어 처형되었다. 다행히 일부 재치 있는 이슬람 신자들은 자신들의 집이나 사업체의 건물 벽에 "람(힌두교의 신)이여 영원하라"라는 등의 구호를 페인트로 재빨리 적어 힌두교인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경찰들은 이러한 참극 속에서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저 피해상황을 확인하는 정도의 역할에 그쳤으며 일부 경찰들은 학살에 동참하기도 했다. 일부 양심적인 경찰이 힌두교 폭도들의 만행을 저지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잔인하게 살해당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무법천지의 참극은 3일 후에 군부대가 파견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당시의 사태에 대한 인도 당국의 공식통계는 사망자가 1천 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구자라트의 이슬람교계 지도자들은 사망자가 적어도 3만 명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힌두교 측이 열차전복사건의 원인을 지나치게 오해한데서부터 출발한 것이지만 구자라트 정부가 사태의 해결에 나서지 않고 수수방관하고 나가서 동조한 것에서 그 책임을 찾아야 한다. 일부 인권단체에서는 이 사태는 주정부에서 정교하게 배후 조종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들은 그 증거로 경찰과 공무원들이 사태를 진정시키기는커녕 대거 폭력에 동참한 점을 들고 있다. 그동안 구자라트주의 집권당인 BJP가 모든 다른 종교를 완전히 소멸시켜서 완전한 힌두교 사회를 만들려는 목적을 가지고 다양한 활동을 해 온 점을 감안하여 보면 이같은 지적도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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