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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현장뉴스/중국

알카에다, 중국 신장 위구르 독립투쟁에 깊숙히 개입 / 2007-08-30

알카에다, 중국 신장 위구르 독립투쟁에 깊숙히 개입

아무도 의식하고 주목하지도 않지만 중국이 겪고 있는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알카에다의 영향력이 서서히 중국에 미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서부 이슬람 지역인 신장위구르 지역이 중국 공산당 정부의 엄격한 통제와 감시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추구하고 있는데 알카에다가 최근 들어서 이들의 독립 움직임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는 징후가 포착되었다.  즉 앞으로 신장위구르 지역의 독립 운동은 알카에다와 중국 정부 간의 무력대결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조짐이 사실이라는 증거도 확보되어 있다.  지난 1월 5일에 중국군은 신장지역의 한 테러리스트들의 은신처를 급습했다.  이 지역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즈스탄과 국경을 대고 있는 지역이다.  당시 이 사건으로 인해 18 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사망하고, 17 명이 체포되었다.  또 사제폭탄 등 테러에 사용될 무기와 장비들이 다량 압수되었다.  체포된 자들을 심문하고 장비들을 분석해 본 결과 이들의 활동은 알카에다와 긴밀한 연계 하에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중국은 알카에다로 대표되는 이슬람 지하드 운동이 중국 영토에서까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고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알카에다가 본격적으로 중국에까지 진출을 시도하면서 중국 정부가 지금까지 처럼 계속해서 지하드활동을 막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911테러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알카에다는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그들의 훈련 캠프에서 약 1천 명의 위구르지역 출신 젊은이들을 훈련시킨 사실도 확인되었다.  또 작년 12월에는 알카에다의 2인자인 아이만 알 자와히리가 직접 육성으로 정부로부터 억압당하는 세계 각지의 이슬람 신자들에게 봉기를 촉구하면서 대표적인 지역으로 중국 서부의 위구르 지역을 거론하였다.  이는 알카에다가 위구르 지역의 독립투쟁에 적극 개입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중국 정부의 위구르통제는 성공적이었다.  무력 항쟁이 이따금씩 일어나도 이를 효과적으로 진압했을 뿐 아니라 중국의 공산당조직이나 지역 정부가 중국 중앙정부의 뜻에 따라 현지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있고, 위구르 지역에 중국의 전통문화가 조금씩 이식되고 위구르 특유의 이슬람 문화가 서서히 희석되어 가는 상황이다.  좀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위구르지역의 독립 움직임은 소련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의 전쟁이 끝날 무렵에 최고조에 달했었다.  당시 이 지역의 인구에서 위구르족의 비중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꾸준한 물적 인적교류로 말미암아 지금에 와서는 위구르족인 소수인으로 전락하고 한족 등 외지인들이 오히려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위구르족의 투쟁역량을 약화시키려는 중국 ㅊ括정책이 크게 성공했음을 확인시켜주는 통계가 분명하다.

그러나 위구르인이 인구 비중상 절반 이하로 내려가 소수자로 전락했다해도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당하는 경제적 차별과 중국 정부의 통치에 대해 반발하고 있고, 실제로 지난 20년간 크고 작은 무력 투쟁이 벌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이 소련에 대해 항전을 벌이고 있을 당시 많은 위구르인 이슬람 젊은이들이 아프가니스탄을 돕기 위해 대소항전에 자원해서 참전했었다.  그런데 소련이 물러간 후 이들이 다시 위구르로 돌아오면서 위구르인들의 투쟁역량은 크게 강화된다.  이들이 아프가니스탄 항전 현장에서 배운 새로운 전술과 전투력을 위구르의 대중항쟁에 접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의 알 카에다와 인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통해 알카에다의 물자 지원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최근 위구르 지역의 독립투쟁 세력은 이들 귀환 전사들이 가세함에 따라 면모를 일신하고 알라신에 대한 새로운 충성심과 AK 47 등 신형 무기로 무장할 수 있게 되었다.

독립투쟁이 무력투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투쟁도 활발하다.  이미 중국 정부는 위구르에 대해 상당한 수순의 자치권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강력한 투쟁을 통해 정치적 자유 확대와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  또 한쪽에서는 무력 항쟁도 벌이는 양동작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전술개발과 정치운동가 및 무장운동가들에 대한 훈련, 그리고 자금 지원을 알카에다가 계속해서 차질 없이 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위구르의 대표적인 무장독립투쟁단체인 동투르케스탄이슬라믹운동(ETIM)은 최근 위구르 자치지역의 행정관서 습격, 고위공무원 암살, 폭탄테러 등 다양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시간이 좀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1997년의 베이징의 종난하이에서 벌어진 폭탄테러도 이들의 소행이다.  이는 이들의 공격 목표가 위구르 내에 머무르지 않고 중국의 심장부까지 겨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97년에 벌어진 대규모 시위인 이닝시위에도 약 1천 명 가량의 위구르인들이 참여했고, 중국 정부 공안부대의 가혹한 진압으로 150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911 테러 이후 알카에다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산악지역으로 몰리면서 위구르에 대한 지원은 다소 약해졌지만 여전히 지금도 위구르에서는 크고 작은 항전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중국정부의 대응은 강경하다.  평화적인 시위에 대해서도 매우 가혹하게 대응하고 있고, 체포된 용의자나 포로에 대해서는 가혹한 고문이 가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전의 기세가 꺾이지 않자 중국 정부는 위구르에 대한 강경일변도의 정책을 포기하고 교육과 경제지원, 물자교류 등 회유책으로 돌아섰다.

이슬람교에 대한 신앙의 자유를 다소 확대하고 위구르어 교육을 허용했으며, 신장지역의 경제개발에 많은 예산을 책정했고, 이러한 유화정책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위구르인들 가운데서도 피를 부르는 독립투쟁보다는 중국에 편입되어 경제적 혜택을 누리는 것이 보다 안락하고 매력적인 삶을 보장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발생하는 위구르의 무장 투쟁에 대해서는 강경일변도로 대응했다.  즉 화전양면책을 구사한 것이다.  이에 따라 위구르지역 전체가 급속하게 중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게 되었고 중국의 중앙정부 역시 신장 위구르 지역으로부터 느껴지는 테러리즘의 위협은 상당히 해소되었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처럼 어느 정도 중국정부가 안도감을 느끼기 시작할 즈음하여 알카에다의 2인자인 자와히리가 지난 해 12월에 위구르에 대한 무장과 성전을 촉구한 것이다.  이에 바로 이어서 금년 1월에는 위구르 지역에 있는 인민해방군 사무소에 대한 습격 사건도 벌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 정부는 위구르 지역의 테러의 위협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예전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지난 1월에 공안원들이 테러리스트들의 본거지를 습격해 압수한 장비들을 분석한 결과 이들의 폭발 장비 등이 마드리드와 런던테러에 사용되었던 장비들과 거의 같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중국이 신장위구르 지역을 안정화시키고 무장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정책과 미국이 이라크에서 상황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정책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수 있다.  미국은 주로 테러리스트들과 무장세력을 분쇄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지역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안정이 테러리스트들의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이 현재까지는 이러한 정책을 통해 알카에다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테러리스트들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신장위구르지역을 안정화시키는 데는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현재까지의 결과이며, 앞으로도 이러한 성공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