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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현장뉴스/수단

수단의 노예매매 실상(2) / 2007-07-27

수단의 노예매매 실상(2)

당시 누비아는 해마다 카이로의 칼리프에게 노예를 진상해야 했다.  이렇게 노예를 진상해야 하는 임무는 누비아 말고도 트란스옥씨아나, 시지스탄, 아르메니아, 페잔 등도 마찬가지로 강요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식민지로부터 올라오는 진상 노예 만으로는 노예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노예의 상당한 부분은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인근의 적대적인 마을들에 대한 공격을 통해서 조달되었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노예의 수요가 많아질수록 이슬람세력은 내륙 깊숙한 곳에 있는 이교도들의 마을과 나라까지 침입하여 노예를 조달했다. 

역사학자인 스페로 브리오니스는 “아랍 세력은 점차 비잔틴왕국의 영역으로 침략을 확대해 갔고, 침략의 목적 가운데는 노예의 조달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침략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그 횟수가 반복될수록 비이슬람 신자의 수는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노예가 되었다는 것은 이슬람으로 개종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교도의 세력의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의 약화로 이어졌다.  이슬람 세력이 성인 남녀 뿐 아니라 어린아이들까지 노예로 삼았고, 그 대상 지역도 도시와 농촌을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교도들의 세력은 인구의 감소로 인해 방어적 감소 현상이 벌어졌고, 이는 영토적  영향력의 약화와 축소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인도인 역사가인 K. S. 랄은 노예 제도가 정복지역 대한 치안을 확립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범법자들이나 치안을 교란하는 반란세력의 준동이 심한 곳, 인구가 많은 곳, 그리고 지형상 반드시 점령해야 할 요충지 등의 지역에서 노예들을 집중적으로 조달하는 방법을 통해서 지역 주민들을 순종적으로 만들어 치안을 유지시켰다는 것이다.  랄 은 “이슬람군이 인도를 침략한 후부터 인도인들은 대거 노예로 잡혀서 다른 나라로 팔려나갔다.  다른 나라로 노예로 팔려가지는 않는다 해도 인도의 타지로 강제로 옮겨져 천한 일에 강제로 종사하도록 했다.” 

노예들은 당연히 이슬람으로 강제개종되었다.  지하드에 대해 깊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학자인 패트리시아 크로네는 “지하드의 결론은 남성은 잡아서 죽이거나 노예로 파는 것이다.  또 남자는 한 곳에 모이면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노예로 곳곳의 다양한 지방으로 팔아 넘겨 뭉치지 못하도록 분산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개종을 시킨다.  그리고 이슬람을 믿는 주인에게 반드시 복종하도록 훈련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대를 이어가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물과 세계를 이슬람의 시각으로 보게 된다.”고 말했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토마스 펠로우는 영국 사람이지만 1716에 외항선박의 사환으로 외국을 여행하다가 지하드세력에게 납치되어 모로코에서 23년간 노예 생활을 했다.  그가 생전에 남긴 기록을 보면 그를  납치한 이슬람세력은 그와 다른 포로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할 때까지 고문했다고 한다.  그 역시 수 주일동안 굶고, 구타를 당했고 결국은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슬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는 고문과정에서 살을 태우는 고문을 당했는데 살이 타들어가 뼈가 드러났다고 한다.

이처럼 이슬람의 팽창역사를 배경으로 하여, 이슬람세계에서는 이슬람세를 확대하는 방법으로 정복과 노예화를 당연한 방법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러한 역사적 악순환은 이슬람세계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서구사회도 전쟁과 정복, 그리고 노예화의 역사는 있었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의 노예 무역과 거래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철저한 비판을 받고 그 공과가 엄격하게 정리가 된 것 같다.  또 명시적으로 피해를 입은 나라와 세력에 대해서는 상당한 액수의 피해 배상금이 지급되기도 했고, 명백하게 책임이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처벌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유럽과 미국에서 노예 무역이 성행한다고 믿을 만한 증거는 거의 없다.  반면 이슬람권의 노예 사냥과 거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재진행형 임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별다른 관심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서 다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이슬람이 과거 노예제도로 인해 상처를 크게 입은 흑인들 사이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아마도 이슬람이 기독교가 한참 유럽과 미국에서 왕성하던 시기에 노예 제도가 성행했다는 사실을 들어 기독교를 노예제도를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라고 선전한 것이 먹혀든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노예제도를 이야기하면 16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 백인들에 의해서 자행된 것만 생각하지만 그 규모로만 보면 이슬람이 저지른 노예 밀매가 더 규모가 크다.  16-19세기 사이에 미국과 유럽의 백인들은 약 1050만 명의 노예를 거래했다고 추정된다.  이는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사냥한 노예를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팔아넘긴 숫자와 아프리카인들을 유럽으로 끌고 들어온 숫자의 합이다.  반면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아랍의 이슬람 세력이 사하라와 홍해, 그리고 인도양 유역에서 벌인 노예 사냥과 거래의 건수는 1700 만 건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