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세계의 인종전시장(1)
지난 1654년, 세파딕 유대인(Sephardic Jewish; 스페인 혹은 포르투갈계 유대인)난민들이 뉴 암스테르담에 상륙했다. 훗날 뉴 암스테르담은 영국에 의해 장악된 후 뉴욕으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후 항해술이 발달하고 유럽과 미대륙 사이의 왕래가 빈번해 지면서 더 많은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미주로 이주했다. 이처럼 유대인들이 늘어나고 유대인들 특유의 응집력이 발휘되면서 그들은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적지 않은 무시못할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으로 선장했다. 1880년 경에는 약 6만 명의 유대인들이 뉴욕에 거주하게 되었고, 1914년에는 약 150 만 명까지 늘어났다.
20세기 들어 뉴욕은 미국에 거주하는 뉴욕의 정신적 문화적 수도로 부상했다. 유대인들은 미디어와 예술 분야에 그들의 이름을 올려 놓으면서 미국 현대 문화의 흐름을 좌우하는 중심세력이 되었다. 이처럼 그들의 영향력이 증대하자 그들도 심리적으로 보다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유대인 커뮤니티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폐쇄성이 그만큼 해소되었고, 이민족의 문화에도 마음을 열게 되었으며, 복음에 대해서도 전에 없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모든 유대인들인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부루클린 지역의 보로우 파크나 크라운 하이트 지역에 집중적으로 모여 살고 있는 하시딕 유대인은 이민족의 문화나 종교에 눈과 귀를 닫은 채 정통 유대인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고집하는 매우 폐쇄적인 유대인 집단이다. "Jews for Jesus"의 저자인 미치 포맨은 이들을 위해서는 보다 창조적인 전도 방법이 개발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뉴욕에서 거주하고 있는 자마이카인들이나 도미니카인들 중에서도, 가정도우미나 노인 간병인들로 일하는 여성들 가운데 기독교인이 두드러지게 많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이들이 하시딕 유대인들 가운데 노인들을 돌보는 도우미로 취업한다면 고집불통의 하시딕 유대인들에게 메시야를 전할 수 있는통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도미니카나 자마이카계 가정도우미들의 헌신과 철저한 훈련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뉴욕의 유대인 집단 가운데는 부르카나 유대인들이 있다. 이들은 우즈베키스탄에서 미국으로 온 유대인들이고 그 규모는 5만 명 가량이나 되는데 이들은 좀처럼 그리스도에 마음을 열지 않는다. 이들은 주로 퀸스 지역과 포레스트 힐스 지역에 집단 거주하는데, 거의 복음에 대해 들어볼 기회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 이유는 이들이 복음에 대해 완강하다는 이유와 함께 우즈벡어를 구사할 수 있는 전도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래 전 뉴욕이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시절, 아프리카계 이슬람 신자들이 미국으로 들어왔다. 자진 이민보다는 노예로 들어온 사람이다. 이들이 지금의 부루클린 지역에 집단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다른 종교나 문화에 대해서 매우 관대했기 때문에 적지 않은 흑인들이 네덜란드의 영향을 받은 개혁주의 기독교로 개종했다. 1970년 대까지 뉴욕에 존재하는 이슬람 모스크는 10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100개를 넘기고 있고, 뉴욕시 안에만 약 60만 명의 이슬람 신자가 거주하는 것으로 통계가 잡히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부루클릭 바로 인근의 베이 리지 지역에 집중 거주하고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이슬람 신자들 가운데서도 지역적으로 볼 때 중심부에 사는 사람들보다는 지역의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이 다른 문화나 종교와 접할 기회가 많을 것이다. 실제로 그들 가운데서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 수는 매우 적어서 전체 이슬람 커뮤니티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슬람 이민자들은 미국 내의 다른 종족 그룹에 비해 출산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자녀들도 많다. 이들은 대개 자녀들을 이슬람계 사립학교에 보낸다. 1995년에는 뉴욕과 롱아일랜드 지역에 있는 이슬람계 사립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수가 200 명 가량이었다. 그러나 3년 후에는 13개 학교에 2400 명 가량의 학생들이 이슬람계 학교에 다닌다는 통계가 나왔다. 뉴욕타임즈는 이들 이슬람 학교들이 이슬람계 젊은이들과 미국의 젊은 문화들 사이를 차단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학교들은 늘어날 것이라고 논평했다. 물론 이러한 학교들로 인해 외부 문화, 혹은 미국의 주류 문화와 차단되면서 복음과도 차단되고 있다. 공립학교나 이슬람계가 아닌 다른 사립학교에 다녔더라면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믿는 급우들과 만날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한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청소년들도 좀더 성장하면 결국 보통 미국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고 직장생활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미국의 주류사회와 좀처럼 교류나 유대를 맺지 못하고 있다. 미국 한복판에 살면서도 미국과 문화적인 담을 높이 쌓아놓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미국에 살면서도 미국과도 분리되어 있고, 복음과도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지난 1654년, 세파딕 유대인(Sephardic Jewish; 스페인 혹은 포르투갈계 유대인)난민들이 뉴 암스테르담에 상륙했다. 훗날 뉴 암스테르담은 영국에 의해 장악된 후 뉴욕으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후 항해술이 발달하고 유럽과 미대륙 사이의 왕래가 빈번해 지면서 더 많은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미주로 이주했다. 이처럼 유대인들이 늘어나고 유대인들 특유의 응집력이 발휘되면서 그들은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적지 않은 무시못할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으로 선장했다. 1880년 경에는 약 6만 명의 유대인들이 뉴욕에 거주하게 되었고, 1914년에는 약 150 만 명까지 늘어났다.
20세기 들어 뉴욕은 미국에 거주하는 뉴욕의 정신적 문화적 수도로 부상했다. 유대인들은 미디어와 예술 분야에 그들의 이름을 올려 놓으면서 미국 현대 문화의 흐름을 좌우하는 중심세력이 되었다. 이처럼 그들의 영향력이 증대하자 그들도 심리적으로 보다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유대인 커뮤니티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폐쇄성이 그만큼 해소되었고, 이민족의 문화에도 마음을 열게 되었으며, 복음에 대해서도 전에 없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모든 유대인들인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부루클린 지역의 보로우 파크나 크라운 하이트 지역에 집중적으로 모여 살고 있는 하시딕 유대인은 이민족의 문화나 종교에 눈과 귀를 닫은 채 정통 유대인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고집하는 매우 폐쇄적인 유대인 집단이다. "Jews for Jesus"의 저자인 미치 포맨은 이들을 위해서는 보다 창조적인 전도 방법이 개발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뉴욕에서 거주하고 있는 자마이카인들이나 도미니카인들 중에서도, 가정도우미나 노인 간병인들로 일하는 여성들 가운데 기독교인이 두드러지게 많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이들이 하시딕 유대인들 가운데 노인들을 돌보는 도우미로 취업한다면 고집불통의 하시딕 유대인들에게 메시야를 전할 수 있는통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도미니카나 자마이카계 가정도우미들의 헌신과 철저한 훈련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뉴욕의 유대인 집단 가운데는 부르카나 유대인들이 있다. 이들은 우즈베키스탄에서 미국으로 온 유대인들이고 그 규모는 5만 명 가량이나 되는데 이들은 좀처럼 그리스도에 마음을 열지 않는다. 이들은 주로 퀸스 지역과 포레스트 힐스 지역에 집단 거주하는데, 거의 복음에 대해 들어볼 기회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 이유는 이들이 복음에 대해 완강하다는 이유와 함께 우즈벡어를 구사할 수 있는 전도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래 전 뉴욕이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시절, 아프리카계 이슬람 신자들이 미국으로 들어왔다. 자진 이민보다는 노예로 들어온 사람이다. 이들이 지금의 부루클린 지역에 집단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다른 종교나 문화에 대해서 매우 관대했기 때문에 적지 않은 흑인들이 네덜란드의 영향을 받은 개혁주의 기독교로 개종했다. 1970년 대까지 뉴욕에 존재하는 이슬람 모스크는 10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100개를 넘기고 있고, 뉴욕시 안에만 약 60만 명의 이슬람 신자가 거주하는 것으로 통계가 잡히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부루클릭 바로 인근의 베이 리지 지역에 집중 거주하고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이슬람 신자들 가운데서도 지역적으로 볼 때 중심부에 사는 사람들보다는 지역의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이 다른 문화나 종교와 접할 기회가 많을 것이다. 실제로 그들 가운데서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 수는 매우 적어서 전체 이슬람 커뮤니티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슬람 이민자들은 미국 내의 다른 종족 그룹에 비해 출산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자녀들도 많다. 이들은 대개 자녀들을 이슬람계 사립학교에 보낸다. 1995년에는 뉴욕과 롱아일랜드 지역에 있는 이슬람계 사립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수가 200 명 가량이었다. 그러나 3년 후에는 13개 학교에 2400 명 가량의 학생들이 이슬람계 학교에 다닌다는 통계가 나왔다. 뉴욕타임즈는 이들 이슬람 학교들이 이슬람계 젊은이들과 미국의 젊은 문화들 사이를 차단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학교들은 늘어날 것이라고 논평했다. 물론 이러한 학교들로 인해 외부 문화, 혹은 미국의 주류 문화와 차단되면서 복음과도 차단되고 있다. 공립학교나 이슬람계가 아닌 다른 사립학교에 다녔더라면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믿는 급우들과 만날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한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청소년들도 좀더 성장하면 결국 보통 미국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고 직장생활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미국의 주류사회와 좀처럼 교류나 유대를 맺지 못하고 있다. 미국 한복판에 살면서도 미국과 문화적인 담을 높이 쌓아놓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미국에 살면서도 미국과도 분리되어 있고, 복음과도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선교현장뉴스 > 미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히스패닉 이슬람 급증가세 / 2006-10-02 (0) | 2011.11.08 |
---|---|
미국법원, 탈리스만에너지 관련 소송 기각 / 2006-09-20 (0) | 2011.11.08 |
미국, 최초로 이슬람 신자 하원의원 탄생할 듯 / 2006-09-18 (0) | 2011.11.08 |
미국, 교회에서 열리는 신학교 강좌로 소송 / 2006-09-15 (0) | 2011.11.08 |
미국 뉴욕, 세계의 인종전시장(2) / 2006-09-13 (0) | 2011.11.08 |
미국 몰몬 원리주의 리더, 일부 다처문제로 기소 / 2006-09-04 (0) | 2011.11.07 |
미국, 911테러로 이슬람, 아랍계 임금 10% 감소 / 2006-08-28 (0) | 2011.11.05 |
미국의 전쟁, "아랍계 미국인들은 괴로워" / 2006-08-10 (0) | 2011.11.04 |
미국의 한인 종교이민은 요지경 / 2006-08-02 (0) | 2011.11.04 |
미국 / 미주 대륙의 국가별 종교의 자유 실태 2006-07-31 (0) | 2011.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