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오바산조 전 대통령이 샤리아법 막지 않은 이유
얼마 전까지 나이지리아 대통령으로 재임하다가 선거를 통해 권력을 후임자에게 이양하고 전직 대통령이 되었으나 여전히 국정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올루세군 오바산조 전 대통령이 자신이 기독교인이고, 북부 지역의 이슬람화가 헌법을 명백하게 위반하고 있는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방치해 두었던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는 회견을 가졌다. 나이지리아에서는 그의 재임 당시인 2000년 경부터 북부 지역의 이슬람 인구 밀집된 주들이 주 내의 소수의 기독교인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전면적인 이슬람화를 추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중앙정부는 마땅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국내외에서는 이러한 중앙정부에 대해 적지 않은 비난이 일었었다. 이에 오바산조 전 대통령은 당시의 이슬람화는 북부 지역의 정치인들의 정치적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오바산조 전 대통령은 현재 라고스 인근의 1만 2천 에이커 규모의 너른 노천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주요 교단인 Redeemed Christian Church of God의 55차 연차 총회에 참석 중인데 그는 이 곳에서 만난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북부 지역에서 샤리아법이 도입되었던 1999 - 2003년의 시기는 카두나주, 카노주, 사가무주, 우무아히아주 등에서 벌어진 종족간의 폭동이 겨우 어렵게 봉합된 직후였기 때문에 정부가 샤리아법을 막기 위해 개입할 경우 또다시 폭동이 벌어질 수도 있는 어려운 시기였다고 말했다.
당시 샤리아법 도입을 막지 못하자 자신에게 쏟아진 국제적인 비난에 대해서도 “나는 그렇게 나를 비난하는 국제사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샤리아법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다면, 아주 긴 기간 동안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살아남을 것이고, 정치적인 동기에 의해 만들어진 법이라면 머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이 것이 역사적인 순리다 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치적 이기심 때문에 당시 처음으로 샤리아법을 도입했던 주지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고 말했다.
“혹자는 탱크를 동원해서라도 샤리아법의 동원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샤리아법 도입을 주도한 정치인들은 고의가 되었던 우연히 그렇게 되었던지간에 이 나라가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조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했다.” 또한 샤리아법이 도입되지 않은 남쪽의 주민들도 북쪽 지방에 샤리아법이 도입되는 상황을 남의 일로 받아들여 별로 관심이 없다보니 오바산조의 입장에서는 샤리아법의 도입을 막을만한 국민적 여론을 등에 업을 수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쨌든 나이지리아는 헌법상 특정 종교를 우대하거나 박대할 수 없는 종교적 세속국가이며 국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쪽 지방은 12개 주가 모두 거의 비슷한 시기에 샤리아법을 도입하여 국가 사법체계에 의해 남의 물건을 훔친 사람의 경우 징역형이나 벌금형 대신 오른 팔을 자르고, 간통범이나 주류를 사고 팔다가 적발되는 경우 채찍형에 처하는 야만적인 제도를 시행에 옮긴 것이다.
현재의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이슬람 신자로 샤리아법이 도입된 북부 출신이다. 이는 올루세군 오바산조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샤리아법을 적극적으로 막지 못한 것에 원인이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슬람 표는 이슬람 신자에게 결집한 반면, 비이슬람 신자들은 오바산조 대통령의 무기력함에 실망하여 반이슬람표로 결집하는데 실패한 결과 이슬람 신자가 집권하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얼마 전까지 나이지리아 대통령으로 재임하다가 선거를 통해 권력을 후임자에게 이양하고 전직 대통령이 되었으나 여전히 국정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올루세군 오바산조 전 대통령이 자신이 기독교인이고, 북부 지역의 이슬람화가 헌법을 명백하게 위반하고 있는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방치해 두었던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는 회견을 가졌다. 나이지리아에서는 그의 재임 당시인 2000년 경부터 북부 지역의 이슬람 인구 밀집된 주들이 주 내의 소수의 기독교인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전면적인 이슬람화를 추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중앙정부는 마땅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국내외에서는 이러한 중앙정부에 대해 적지 않은 비난이 일었었다. 이에 오바산조 전 대통령은 당시의 이슬람화는 북부 지역의 정치인들의 정치적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오바산조 전 대통령은 현재 라고스 인근의 1만 2천 에이커 규모의 너른 노천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주요 교단인 Redeemed Christian Church of God의 55차 연차 총회에 참석 중인데 그는 이 곳에서 만난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북부 지역에서 샤리아법이 도입되었던 1999 - 2003년의 시기는 카두나주, 카노주, 사가무주, 우무아히아주 등에서 벌어진 종족간의 폭동이 겨우 어렵게 봉합된 직후였기 때문에 정부가 샤리아법을 막기 위해 개입할 경우 또다시 폭동이 벌어질 수도 있는 어려운 시기였다고 말했다.
당시 샤리아법 도입을 막지 못하자 자신에게 쏟아진 국제적인 비난에 대해서도 “나는 그렇게 나를 비난하는 국제사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샤리아법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다면, 아주 긴 기간 동안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살아남을 것이고, 정치적인 동기에 의해 만들어진 법이라면 머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이 것이 역사적인 순리다 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치적 이기심 때문에 당시 처음으로 샤리아법을 도입했던 주지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고 말했다.
“혹자는 탱크를 동원해서라도 샤리아법의 동원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샤리아법 도입을 주도한 정치인들은 고의가 되었던 우연히 그렇게 되었던지간에 이 나라가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조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했다.” 또한 샤리아법이 도입되지 않은 남쪽의 주민들도 북쪽 지방에 샤리아법이 도입되는 상황을 남의 일로 받아들여 별로 관심이 없다보니 오바산조의 입장에서는 샤리아법의 도입을 막을만한 국민적 여론을 등에 업을 수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쨌든 나이지리아는 헌법상 특정 종교를 우대하거나 박대할 수 없는 종교적 세속국가이며 국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쪽 지방은 12개 주가 모두 거의 비슷한 시기에 샤리아법을 도입하여 국가 사법체계에 의해 남의 물건을 훔친 사람의 경우 징역형이나 벌금형 대신 오른 팔을 자르고, 간통범이나 주류를 사고 팔다가 적발되는 경우 채찍형에 처하는 야만적인 제도를 시행에 옮긴 것이다.
현재의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이슬람 신자로 샤리아법이 도입된 북부 출신이다. 이는 올루세군 오바산조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샤리아법을 적극적으로 막지 못한 것에 원인이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슬람 표는 이슬람 신자에게 결집한 반면, 비이슬람 신자들은 오바산조 대통령의 무기력함에 실망하여 반이슬람표로 결집하는데 실패한 결과 이슬람 신자가 집권하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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