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루, 몰락한 에덴동산
사람이 에덴동산에 다시 들어갈 수 있다면 행복해질까? 반드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인간이 여전히 죄성을 간직하고 있는한 에덴동산도 인간에게 행복을 담보해 주지는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이다. 나우루는 알바트로스(국제 보호조인 새의 일종)의 똥이 산호초처럼 쌓이면서 이루어진 섬나라이다. 크기는 여의도 정도이고, 자동차로 30분이면 온나라 구경이 모두 끝난다. 이나라의 표면을 덮고 있는 알바트로스의 똥은 나우루인들에게는 황금덩어리였다. 이 똥 속에 함유되어 있는 인광성분을 탐낸 국제자원개발업자들이 뛰어든 것이다. 나우루 정부는 외국의 자원개발업자들에게 인광채굴권을 허가해주고 온나라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데 충분한 돈을 받아냈다.
인광석만으로도 1년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섰다. 정부는 결혼하는 이들에게는 무상으로 새집을 제공했고, 병원비, 교육비, 전기료 등 각종 공공서비스는 공짜였고, 세금은 하나도 없었다. 인구도 몇몇 안되니 그래도 남는 돈은 온국민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다. 결국 나우루인들은 살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한 풍요로운 부가 보장되는 그야말로 지상낙원에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풍요는 또 다른 병을 낳았다. 점차 게을러진 나우루인들은 걸어다니는 것조차 징그럽게 귀찮게 여기게 되었다. 공무원도 외국에서 수입하고, 이 나라 국민들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상점 등 기반시설들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모두 외국인들이다. 심지어 물건 사기 위해 상점에 가서도 차에서 내리는 것조차 귀찮아 하여, 차에 탄채로 쇼핑을 하는 Drive in Through 형태의 상점이 이 나라의 보편적인 상점형태이다. 이러한 결과로 먹고 자기만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비만이 만연하였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뚱뚱한 사람을 멋있게 여기는 문화가 있어 그 누구도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결과 현재 나우루의 거의 전국민들이 당뇨를 앓고 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에덴동산을 방불하는 행복한 게으름은 20세기가 끝날 무렵 끝장 났다. 인광석도 고갈된다는 경악스런 사실을 그동안 몰랐던 것이다. 인광석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고갈되어 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등장한 새로운 수익모델은 인터넷을 이용한 국제금융이다. 러시아 마피아나 국제범죄단체들의 돈세탁기지가 되어 준 것이다. 이것도 문제는 많다. 첫째로 국제금융업이란 이미 게을러질대로 게을러져 무기력증에 단단히 빠진 나우루인들의 몫이 아니라 나우루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결국 원주민들은 이들 외국인 금융업자들이 벌어들인 거대 자본의 개평이나 조금 뜯어 먹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했고, 부는 일부 금융업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이다. 또한 911테러 이후 미국의 주도로 국제자금세탁기지가 하나 하나 분쇄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우루라고 안전할리는 없는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의 자금이 몰려 있는 나우루 내의 은행들의 상당수가 이미 미국의 압력에 의해 폐쇄되었다. 예전처럼 다소 원시적인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나마 살아보려해도 그것도 불가능하다. 인광석 채취를 위해 온 나라가 무질서하게 파헤쳐져 황폐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나우루는 호주 정부의 원조와 지원을 받고 연명하는 처량한 경제상황이다. 게다가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언젠가는 나우루섬도 바다 속으로 가라 앉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영원할 것 같은 에덴동산 같던 나우루섬이 이제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중환자처럼 변해 버린 모양세이다.
선교적 관점에서 보면 등따숩고 배부른 때보다는 오히려 지금이 나을 수도 있다. 나우루는 통계적으로 전인구의 90.5%가 기독교인이다. 이를 좀더 세분하면, 2/3는 개신교계열이고, 1/3은 카톨릭 계열이다. 그러나 한참 좋은 세월을 구가하던 시절의 나우루인들의 신앙은 명목상의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5공화국 시절에 우리 나라에서 한참 유행했던 어느 건전가요의 가사처럼 "원하는 것은 모두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모두 이룰 수 있는" 그런 환경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함께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순교하자는 식의 제자도가 먹혀들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질만능주의에 의해 고갈된 영성을 회복하는 것은 교회의 몫이다. 전국민의 90%가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도, 국제범죄단체의 돈세탁이나 하고 있는 떨어진 도덕성을 회복하는 것도 교회가 할 일이다. 갑작스레 찾아온 재앙적인 경제파국을 만나 어쩔줄 모르고 헤메고 있는 나우루인들에게 보다 새롭고 높은 차원의 행복과 삶의 가치를 가르치는 것도 교회의 일이다. 경제의 재앙은 새로운 회복의 시작이다.
사람이 에덴동산에 다시 들어갈 수 있다면 행복해질까? 반드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인간이 여전히 죄성을 간직하고 있는한 에덴동산도 인간에게 행복을 담보해 주지는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이다. 나우루는 알바트로스(국제 보호조인 새의 일종)의 똥이 산호초처럼 쌓이면서 이루어진 섬나라이다. 크기는 여의도 정도이고, 자동차로 30분이면 온나라 구경이 모두 끝난다. 이나라의 표면을 덮고 있는 알바트로스의 똥은 나우루인들에게는 황금덩어리였다. 이 똥 속에 함유되어 있는 인광성분을 탐낸 국제자원개발업자들이 뛰어든 것이다. 나우루 정부는 외국의 자원개발업자들에게 인광채굴권을 허가해주고 온나라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데 충분한 돈을 받아냈다.
인광석만으로도 1년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섰다. 정부는 결혼하는 이들에게는 무상으로 새집을 제공했고, 병원비, 교육비, 전기료 등 각종 공공서비스는 공짜였고, 세금은 하나도 없었다. 인구도 몇몇 안되니 그래도 남는 돈은 온국민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다. 결국 나우루인들은 살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한 풍요로운 부가 보장되는 그야말로 지상낙원에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풍요는 또 다른 병을 낳았다. 점차 게을러진 나우루인들은 걸어다니는 것조차 징그럽게 귀찮게 여기게 되었다. 공무원도 외국에서 수입하고, 이 나라 국민들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상점 등 기반시설들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모두 외국인들이다. 심지어 물건 사기 위해 상점에 가서도 차에서 내리는 것조차 귀찮아 하여, 차에 탄채로 쇼핑을 하는 Drive in Through 형태의 상점이 이 나라의 보편적인 상점형태이다. 이러한 결과로 먹고 자기만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비만이 만연하였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뚱뚱한 사람을 멋있게 여기는 문화가 있어 그 누구도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결과 현재 나우루의 거의 전국민들이 당뇨를 앓고 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에덴동산을 방불하는 행복한 게으름은 20세기가 끝날 무렵 끝장 났다. 인광석도 고갈된다는 경악스런 사실을 그동안 몰랐던 것이다. 인광석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고갈되어 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등장한 새로운 수익모델은 인터넷을 이용한 국제금융이다. 러시아 마피아나 국제범죄단체들의 돈세탁기지가 되어 준 것이다. 이것도 문제는 많다. 첫째로 국제금융업이란 이미 게을러질대로 게을러져 무기력증에 단단히 빠진 나우루인들의 몫이 아니라 나우루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결국 원주민들은 이들 외국인 금융업자들이 벌어들인 거대 자본의 개평이나 조금 뜯어 먹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했고, 부는 일부 금융업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이다. 또한 911테러 이후 미국의 주도로 국제자금세탁기지가 하나 하나 분쇄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우루라고 안전할리는 없는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의 자금이 몰려 있는 나우루 내의 은행들의 상당수가 이미 미국의 압력에 의해 폐쇄되었다. 예전처럼 다소 원시적인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나마 살아보려해도 그것도 불가능하다. 인광석 채취를 위해 온 나라가 무질서하게 파헤쳐져 황폐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나우루는 호주 정부의 원조와 지원을 받고 연명하는 처량한 경제상황이다. 게다가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언젠가는 나우루섬도 바다 속으로 가라 앉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영원할 것 같은 에덴동산 같던 나우루섬이 이제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중환자처럼 변해 버린 모양세이다.
선교적 관점에서 보면 등따숩고 배부른 때보다는 오히려 지금이 나을 수도 있다. 나우루는 통계적으로 전인구의 90.5%가 기독교인이다. 이를 좀더 세분하면, 2/3는 개신교계열이고, 1/3은 카톨릭 계열이다. 그러나 한참 좋은 세월을 구가하던 시절의 나우루인들의 신앙은 명목상의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5공화국 시절에 우리 나라에서 한참 유행했던 어느 건전가요의 가사처럼 "원하는 것은 모두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모두 이룰 수 있는" 그런 환경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함께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순교하자는 식의 제자도가 먹혀들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질만능주의에 의해 고갈된 영성을 회복하는 것은 교회의 몫이다. 전국민의 90%가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도, 국제범죄단체의 돈세탁이나 하고 있는 떨어진 도덕성을 회복하는 것도 교회가 할 일이다. 갑작스레 찾아온 재앙적인 경제파국을 만나 어쩔줄 모르고 헤메고 있는 나우루인들에게 보다 새롭고 높은 차원의 행복과 삶의 가치를 가르치는 것도 교회의 일이다. 경제의 재앙은 새로운 회복의 시작이다.